최참판댁-<토지>
초가지붕위에선 지금 한창
박경리 작가의 한민족의 위대한 서사시
<토지>의 배경을 복원하기위해
역사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조씨 고가(趙氏 古家)
“조선 개국공신 조준(趙浚 1346~1405년, 本平壤)
직계손인 조재희(趙載禧)가 낙향하여 지었다.
구전에 의하면 16년에 걸쳐 건축한 것이라 하며
‘조부자집’ 으로 알려져 있다.
동학혁명과 한국전쟁[6·25전쟁] 을 거치면서
사랑채와 행랑채, 후원에 초당, 사당 등이 불타 없어지고
안채와 방지(方池)만이 남아 옛 영화의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이 집은 박경리 소설 <토지>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세월은 있지만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옛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역사이다.
자연의 품을 느끼게 하는 정자(亭子)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지만
함께할 수 있는 온정이 없고
불러줄 바람소리조차
숨죽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
아무리 달려도 품안에 안을 수가 없다.
항상 영원할 것 같은 그 순간이지만
뒤돌아본 순간
저 멀리 과거의 숲으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또 다른 과거를 만들기 위해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는 세월이 있어
한편으론 쓸쓸하지만
관광이라는 풍속을 등에 업고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자취들을
하나씩 만져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풍경 속에서
목이 마르다싶으면
맛의 느낌을 알 수 없는 고로쇠이지만
목구멍과 가슴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눈앞에 펼쳐진 고당(古堂)에서
침묵으로 대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별당
안채
사랑방
행랑채
그리고 논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산을 넘고
강을 넘어
천혜의 자연을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연무를 뿌려가며
굴뚝사이로 밥을 짓고 있는 시골집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곳은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것이다.
별당엔 연못이 있고
처마 끝에선 풍경소리가 귀를 맑게 하고
담장엔 매화꽃이 피어나
수줍음을 탈 별당아씨의 모습을 감춰주기도 한다.
비록 시골살림이지만
넉넉한 인심을 알아볼 수가 있고
연세(80대 후반~90대 초반)가 지긋하신 서당 선생님께서는
언제라도 대화의 깊이를 논하고자
서책을 올려놓은 탁자 앞에서
인연을 기다리고 계신다.
발길은 천릿길을 달려온 터라
시간을 핑계로
대신 사랑채에 담긴 침묵의 깊이를 등에 올린 후
바람처럼 빠져나와 화개장터로 향했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도로를 확장하겠다고 강둑을 흔들어놓으며
인고의 세월을 지탱해온
벚꽃나무들을 위협하고 있다.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최참판댁에서 ‘토지’의 배경을 관람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