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소유와 무소유

청아당 2011. 3. 9. 23:58

소유와 무소유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소유이다.

손에 쥐고 있지 않은 것은 무소유이다.

하지만 소유 속에서 무소유를 발견하고

무소유속에서 소유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차피 손에 쥔 것이 있다면

모두다 버려야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버릴 수가 없다.

우주 속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삶은

소유 속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소유의 울타리 속에서

무소유를 외치는 것은

소유보다는

무소유가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소유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족쇄라면

무소유는 깨달음 속에서 홀가분하게

마음 놓고 살아가는 삶의 해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소유는 종속되어져 있고

무소유는 주종관계의 연결고리를 끊고

삶의 여유 공간으로써

우주적인 안목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은

인생이 살만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음을 뜻하기도 하다.

손으로 바다를 건져내어

숨 쉴 틈 없이

바람 따라 나서는 것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길이 생기고

과거부터 달려온 길보다

현재 달리고 있는 길이 더 아름다워

미래를 향해 꿈을 키워나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눈만 뜨면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내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내밀며

고개를 들고 달리는 것은

바람보다 더 든든한

길이 생겨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말아야할 바람이지만

숲 속에 갇혀있던 바람이기에

틈만 나면 숲을 흔들어

거리를 활보하고

산을 넘어 바다를 활보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무소유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가보지 못한 생소한 길과

바람이 달릴 방향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유는

바람의 향방을 알 수 없지만

무소유는

바람의 향방을 알고 가기에

소유로 살아가는 삶보다는

소유를 가슴으로 품으며 무소유로 살아가는 삶이

더 아름답고 편안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소유만큼 홀가분하고 텅 빈 공간은 없다고

소유에서

무소유의 경계로 나오라고 유혹하기도 한다.

가끔씩 자랑할 만한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보지만

스스로 내려놓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인위적으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숲 속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들고 온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참된 행복도

참된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숲 속이지만

어느새 우주와 하나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행복으로

삶의 즐거움으로

소유 없는 무소유에 갇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소유가 아닌

무소유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뜻하지만

영원한 삶이 꿈꾸는 것은

소유도 무소유도 아닌

태초 이전의 세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끝을 향해 달리는 것보다

처음을 향해 달리는 것이 더 낫다며

소유와 무소유를 구분하지 않는

숲속바위쉼터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문으로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3월 9일 수요일

 

소유와 무소유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화마을-섬진강  (0) 2011.03.20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0) 2011.03.16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현실  (0) 2011.03.08
손에서 손으로  (0) 2011.03.06
거꾸로 달리는 바람  (0) 201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