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현실
공허한 하늘에다 대고
지금껏 살아온 여정을 되짚어본다.
바람이 스쳐간 얼굴과 몸
존재하면서
존재를 잡을 수 없다는 데에 대한
미안함
그 끝은 새로움에서 시작되어지고 있다.
바람이 달리면
바람 따라 달리고
바람이 멈추면
바람과 함께 멈춘다.
길을 찾아 떠나는
삶의 여정 속에서
바람이 한발 먼저 달리기도하고
바람이 나중에 뒤따라오기도 한다.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입을 즐겁게 해주고
발걸음조차 경쾌하게 해주는 바람이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는 모습은
순결한 명상을 연상케 하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깊은 곳을
흔들어
오늘도 서있고
내일도 서있을 수 있는
힘을 건져내어
한손으로는 우주에 뿌리고
한손으로는 지구에 뿌린다.
바람이 우리들 몸을 스쳐갈 때
편안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분명 바람처럼 현실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자신을 감싸버린 바람이 우리들 시야에서
멀리 사라진 경우이다.
그림자는 몸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바람은 우리들의 몸을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우리들의 상상력을 왜곡시키고 있다.
현실을 잡을 수 없는 바람이
우리들 곁을 지키며
공중으로
수직의 파문을 그으며 사라지거나
수중으로
수직의 파문을 그으며 사라져버려
결국 잡을 수 없는 바람 때문에
손만 갖다 대어도
우리들 눈을 피해 달아나버린다.
그리고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우주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
숨조차 멈춘 채
자신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이 세상은 꿈같은 현실이거나
현실 같은 꿈이기에
현실을 잡을 수 없다.
죽는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말과 같지만
또다시 새로운 여백을 꺼내어
선을 긋고
설계도를 그려나가는 삶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감추어진 뒤에는
감출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듯이
현실을 잡을 수 없다면
우주의 끝에서 바라보며
바람에 밀려 달리고 있는 현실을 주시하면서
오늘도 바람은 달리고 있고
내일도 바람은 달리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 들어도
인생은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011년 3월 8일 화요일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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