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품에 안긴 바람
먼 옛날을 회상해보면
우주적인 행복으로 살아온 날들이 있었다.
등에 질 짐도 없었고
함께 달릴 바람도 없는
고요의 극점 속에서
오직 한길을 향해 달려갔던 그런 날들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세월은 함께 가자고 조르며
주변을 맴돌았고
숲들도 산새들과 함께 지내자고
손발을 잡아끌기도 했다.
수없이 뿌리쳐도
손발을 묶기 위해 달려온 바람 앞에서는
침묵조차 통하지 않았다.
딱히 가야할 길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지만
발길 닿는 대로
걸어야했던 공허한 길이었다.
길 없는 길도
길이 되어 등불을 밝히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며 유혹하는 그런 바람이었다.
가고자하는 길은 없어도
의무적으로 걸어야할 길은 정해져있기에
바람이 불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달려가야 할 우리들만의 공간이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우주의 공간으로 달려가야만 한다.
그 깊이는 자로 잴 수도 없고
그 넓이는 광활하여 우주의 끝에서나 바라볼 수 있어서
꿈의 공간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바람이 불면
제일 먼저 허리부터 낮추고
강한 것은 부러지지 않도록 유연하게 해놓았고
약한 것은 강하게 하여
안팎으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으로 세워놓았다.
그 끝은 항상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을 때
비로소
우리들은 우주의 품으로 안길 수 있었다.
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청량산 숲속바위쉼터에서 바람 따라 달려온 흔적을 찾으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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