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우주의 여백(누락)
살아있는 이 우주가 있기에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리들의 눈에 보여 지고 있다.
손만 뻗으면 잡히는 여백이라는
광활한 공간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욕망은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달려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기초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계단을 밟아 한걸음씩 상승했고
삶의 깊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숲 속에 들어가
고요와 적막으로 잠든 침묵을
흔들어 깨워
제일먼저
왜 살아가야하는지 원초적인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때로는
철학을 들먹이기도 하고
과학을 들먹이기도 하고
종교를 들먹이기도 하면서
삶은
우주가 낳은 빛의 꽃이라 말하며
달리지 않으면
살아가야할 이유가 없다면서
숱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나가도록 압력을 받기도 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우주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말과 통한다.
왜 살아야만 되는지
왜 달려야만 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삶에 대한 질문은 의외로 간단하다.
살아있으니까 살아가야하듯이
죽지못해 살아가는 삶보다는
살기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왜 사느냐고 묻거든
빙긋이 웃어만 주면 된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운명과 숙명
숙명은 우주를 파괴할 수 없지만
운명은 우주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별과 별사이를 순간 이동하듯이
빛보다 더 빠른 우주선이 달리고 있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죽음의 영역이자
신이 존재하는 영역이기에
기도와 명상이 필요하고
그리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다가가기 힘든 신성한 영역으로 담을 쌓아놓고 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우주의 여백은
삶이요
역사이다.
간격을 좁힐수록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노구의 몸으로
돈이 될 만한 폐휴지와 잡동사니들을 줍기 위해
경쟁하듯 발걸음의 속도를 높이며 살아가고 있다.
한발이라도 늦으면
주울 휴지가 없어지기에
혹한의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돌고 또 돈다.
어떤 할머니는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지만
박스를 주어 담아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나
남은 생을 미리 끌어다 쓰기도 한다.
그리고 몸 한쪽이 마비된 뇌졸중 환자들 중
전동휠체어에 기대어 삶을 연장해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뇌졸중환자는
10년이 넘도록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서 있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의 발걸음은
이른 아침부터 가방을 맨 채 양손으로 목발을 짚고
동네를 돌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할머니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차되어져있는 차에 기대어 가면서
목숨 줄을 연장해 나가고 있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과 같다.
이것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하늘이 내린 숙명이다.
굳이 공존하는 선악을 말하지 않더라도
삶의 질이나 질병에 관계없이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걸어가거나
달려야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지금껏 우리들에게 주어진 혜택이라곤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기도하고
춥지 않게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옷을 입도록 허락하며
강하게 누를수록 더 높이 튕겨 오르는
용수철 같은 삶을 원하기도 한다.
젊어서 움직이는 발걸음은 아름답지만
늙어서 움직이는 발걸음은 추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살아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고
가끔씩은
행복을 위해 불행을 겪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종교를 불러들이고 있는가?
숨겨 논 우주의 신비를 들춰내는 일이기에
여백 속에 감춰진 숱한 비밀들이 고맙기도 하고
목숨을 건 명상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는 깨달음은
우주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처음과 끝은 하나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관습과 격식을 파괴해가며
빈 공간에다 우주만한 원을 세워놓고
뛰어들라고 한다.
결국 숨겨진 우주의 여백은
꿈의 청사진으로 장식되어져있지만
삶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나의 꿈이자 희망으로 통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삶의 끝에서 바라보는
우주의 공간은
채움도 비움도 없는
자고나면 새롭게 달려가는 바람이자
혼신의 힘을 다하여
길 위를 달려가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숨겨진 우주속의 비밀을 캐는 일보다는
순백의 설원에서 펼쳐질 삶의 여백이
더 소중하고
더 숭고하다며
뒤돌아보는 일보다는
앞만 보며 달리는 삶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2011년 1월 21일 금요일
숨겨진 우주의 여백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
'『오늘 올린 詩』 > 『오늘 올린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날 위에 선 바람 (0) | 2011.01.30 |
---|---|
허전한 발걸음 (0) | 2011.01.26 |
시작과 마지막(누락) (0) | 2011.01.20 |
하늘이 내린 벌(누락) (0) | 2011.01.16 |
달려야 살 수 있는 삶(누락) (0) | 2011.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