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멈추는 날
팔십 평생 떠돌다 머문 곳은
언덕위에 핀 아름다운 집이다.
수억 년을 달려왔을 세월조차도
무릎 꿇고 두 손 들어 환영의 뜻을 나타낸다.
얼마나 더 달려야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룻밤 자고나면
깊은 고통이 바닷물에 쓸려가듯
환한 미소로 답하며
쾌적한 온도로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더우면 평상위에서 마음 놓고
이마를 식혀주는 바람을 맞이할 수도 있고
추우면 온돌아래에서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며 행복을 즐길 수도 있다.
이제 더는 갈 수 없는 바람이 중심을 잡고 서있다.
마음이 가볍고
발걸음이 가볍고
영혼마저 가볍다면
이곳에서 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한번 뒤집으면
천국이 지옥으로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듯
바람이 움직일 때마다 달려온 보람이
이제야 결실을 맺는다.
얼마나 원했던 삶인가.
가고 또 가도
앞이 보이지 않았던 무심한 세월조차
손뼉 치며 달려와
오랜 지기의 우정처럼 반갑게 맞이해준다.
먼지하나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발끝에서 나는 소리조차
제자리를 잡을 정도로
이제 더는 갈 수 없는 바람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숲길에서 달려온 바람과
바다건너에서 달려온 바람이
계속해서 손을 잡고 돌고 있다.
2010년 8월 11일 수요일
바람이 멈추는 날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