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고목(古木)

청아당 2009. 3. 11. 21:32

고목(古木)

 

오래된 나무가 하늘을 떠받치고 서있는 것은

힘이 남아돌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천의 손으로

천의 얼굴로

힘겹게 하루하루 서있는 것은

뿌리에서 올라온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가끔씩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고목(古木)에서 고목(枯木)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지만

손을 벌려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한해 한해

새롭게 싹을 틔우고

몸체를 불리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삶의 교훈으로 비춰진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겠지만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누려야하는 영광이라면

처음부터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다.

하기야 크나 작으나

바람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요

기쁨이듯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적이고

또 삶의 밑바닥을 경험했다는 소리와 같다.

천의 손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고목도

허리가 휘고

나이든 발걸음으로

힘겹게 하루를 버티고 있듯이

언제 속빈 강정처럼

쓰러질지 모르기에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보이고 있다.

저 큰 덩치가 땅위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거기에다 곡선의 예술미를 자랑하는 소나무가

주변에 수호신처럼

서있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이다.

큰 나무 밑에는

어린 나무대신

그림자가 땅을 덮고 있지만

그림자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햇볕이다.

그림자가 빛이 될 수 있는 것은

큰 고목일수록

더 많은 햇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때마다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것은

가슴이 따뜻한 고목이

하늘을 향해 버티고 서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도

땅을 향해

소리를 질러도

고목은 말이 없다.

아니 침묵으로 일관할 뿐

함부로 큰소리치는 법이 없다.

우주를 포용하듯

모두 다 포용한 체

대답대신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도

가슴을 여는 것도

그리고 어떤 각도로 고목을 바라볼 것인지는

순전히 보는 이의 자유이기에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요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2009311일 수요일

 

수령 500년 된 고목을 바라보며...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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