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을 다 퍼내지 못하듯이 – 강화도(수정)
네발달린 자동차에 탄 사람은
세 사람
같은 생각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장소에 도착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물권을 살핀 결과
길목에 소방도로가 나있지 않은 맹지이다.
3,000평으로 이루어진 밭과 임야가 산비탈에 서있는 것이다.
똑같은 땅도
어느 곳에 서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이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비록 산비탈을 끼고 서있지만
활기를 띄고 있는 내가면 외포리 부근에 위치해 있어
호가가 평당 50~60만 원 정도 간다.
용도는 전원주택이나 펜션으로 딱 좋은 자리이다.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바닷가나 강 그리고 저수지를 끼고 전원주택이나 펜션이
줄을 서서 서있는 것을 보면
물이 있는 곳에
강이 있고
바다가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횟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현장답사도 할 겸
석모도를 향해 오후 3시에 배를 탔다.
갈매기는 배를 향해 모여들고
먹잇감을 달라고 손에 닿을 위치까지 날아와
끼룩거린다.
바람이 차다.
아니 오늘따라 정신이 맑을 정도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온다.
이미 중무장한 몸이라
가슴은 따뜻하다.
석모도 석포항에 도착하여 전득이 고개를 넘어 해명초등학교를 지나
매음리[煤音里, Maeeum-ri] 방면을 향해 달리다보면
2006년부터 생산을 중단하여 지금은 염전 터만 남아있는
삼량염전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외롭게 서있는
“매음 보건진료소” 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내뿜으며
칼바람에 서있다.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되어지고 있는 민머루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발끝으로 모래사장을 밟았다.
“백사장은 폭이 50m, 길이가 약 1km이며, 바닷물이 빠지면 수십만 평의 갯벌이 나타나
학생들의 갯벌 체험장으로 많이 이용되고, 대학생들의 MT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갯벌과 모래에는 미네랄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각종 부인병과 신경통,
여성들의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동해안 해수욕장처럼 깔끔하게 잘 갖추어진
해수욕장이라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조그마한 섬 안에 모래사장이 있고
언덕위에 세워진
“별천지, 언덕위에 하얀집, 춘하추동, 시월애, 토담마을, 바닷가에서” 등
카페와 아름다운 펜션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만으로도
해수욕장으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다.
이미 석포항에서 내린 사람들이 먼저 달려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과 낭만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석모도는 햇빛을 기준으로 남향과 그 반대편에 서있는
펜션이
차가운 겨울날씨를 녹여주고 있다.
개발할 여지가 많은 곳이지만
아직까지는 가슴에 꽉 찰 정도로 따뜻한 느낌은 없다.
섬 중앙부인 석모도에 낙가산(洛伽山) 기슭에 자리 잡은
보문사(普門寺)가 없었다면
허전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차를 돌려 외포리에 도착하여
고려저수지까지 달려와 보니
고려저수지(또는 내가저수지) 주변으로 아름다운 펜션들이 줄지어 서있다.
전에는 분명 이름 없는 뒷산으로 저수지를 안고 서있었는데
지금은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신혼부부가 낚시를 하다가 남편이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고
고려산 정상에 서있는 레이더기지를 올려다보며
강화읍에 도착하였다.
“고려산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 명칭은 오련산(五蓮山)이다.
416년(고구려 장수왕 4)에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였는데,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려 이들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적석사)와 백련사·청련사·황련사·흑련사를 각각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산에서 인근 낙조봉(343m)으로 가는 능선에는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강화읍은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강화인삼센터가 있고 고려궁지(高麗宮址:사적 133)가 있고
마니산(469.4m) 전등사와 외포리를 향해 달릴 수 있는 길목이 있다.
“마니산(469.4m)은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69.4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鼎足山)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사적 130)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남서쪽 기슭에는 정수사 법당(淨水寺法堂:보물 161)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長串敦臺:인천기념물 29) 1기(基)가 있다.”
전등사를 끼고 돌면 함허동천과 정수사가 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썼다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인
'함허동천(涵虛洞天)' 네 글자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함허동천은 기화가 마니산(摩尼山:469.4m) 정수사(精修寺)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
문수산(376.1m)이 버티고 서있고
성동검문소삼거리를 지나면
성동마을입구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김포문수산성이 나오고
문수산장숯불장어구이집이 나온다.
그리고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면
갑곶돈대(甲串墩:사적 306)가 나타난다.
강화에서 유일하게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곳은
갑곶돈대에서 강화초지대교를 향해 나있는 해안도로이다.
해안도로는
강화도를 한 바퀴 선회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으며
동서남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동로, 해안서로, 해안남로, 해안북로로 이루어져 있다.
가속페달을 조절하며
천천히 달려야 바람이 차창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갑곶돈대에서
해안동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더러미포구가 나오고
용진진삼거리가 나오고
용진진, 수연정, 용당돈대,
화도돈대, 강화전성, 오두돈대(廣城堡─烏頭墩臺),
강화광성보가 눈길을 끌며 유혹한다.
광성보 내에는
쌍충비각이 있고
손돌목돈대가 있고
광성돈대가 있고
용두돈대가 있다.
광성보를 지나 달리다보면
덕진진입구사거리가 나오고
덕진진이 나타난다.
덕진진 건너편 대명항 쪽으론
덕포진이 있고
덕포진돈대터가 있다.
덕진교를 지나면
초지진입구교차로가 나오고
우회전하면 전등사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초지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중간에 숯불장어구이집인
초가를 얹어 멋을 부린 통나무로 만들어진
“수연정”에 들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강화해안가에 떠다니는 강물을 내려다보면
세월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인천에서 강화에 올 때는
먼저 강화대교를 건너고
내려갈 때는 반대로
갑곶돈대에서 출발하여
초지진에 들려 휴식을 취한 후
강화초지대교를 건너가는 것이
멋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운치 있는 코스이다.
강화주변에는
김포문수산성으로 진입하여
곡선의 길을 따라 그 끝에 이르면
“전망대”라는 숯불장어구이집이 유명세를 타고 있고
김포조각공원 그리고 고인돌 등이 줄지어 서있다.
발길 닿는 곳이 유적지이다 보니
눈빛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영감이 떠올라야만 가능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강화는
그 자체가
글이자 詩인 것이다.
자연이 자신을 자연이라 부르지 않듯이
강화는
자연이자
역사이자
기록인 것이다.
더 이상 필설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현장이요
역사의 현장이기에
손으로
가슴으로도 쓸 수 없는
마법 같은 매력이 깔려있는 곳이다.
필요하다면 저수지는
해마다 또는 2~3년에 한 번씩 물을 퍼내
바닥을 샅샅이 살필 수가 있지만
바다는 필요하다고해서
바닷물을 다 퍼낼 수는 없다.
궁금하면
손끝에 닿는 느낌만큼만 살아가라 한다.
이 얼마나 현명한 생각인가?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살펴보자!
가난에 찌든 달동네나
손만 대면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단지를 허물고
초호화판 고급빌라나 주택
그리고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은 사람들 같지만
다시 세월이 흐르고
눈높이가 높아지면
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삶의 질을 바꾸려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인 것이다.
그리고 보너스로
보석으로 치장된 이 우주를 다 준다 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이 손에 쥐어야만
얼마나 더 많이 생각해야만
끝이 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저수지는 쉽게 퍼낼 수 있지만
바다는 퍼내고 싶어도 퍼낼 수가 없다.
바닥을 다 드러내면
그것처럼 몰골 사나운 것도 없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물은
측량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바람이 되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람은 불 것이고
내일도 바람은 불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심이 필요할 뿐이다.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