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고인을 찾아뵙는다는 것은 그 또한 우주의 순서인 것을

청아당 2022. 4. 19. 10:52

고인을 찾아뵙는다는 것은 그 또한 우주의 순서인 것을

 

조상에 대한 예의이자 신성한 우주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믿음은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 하듯이

조상에 대한 생각 또한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 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이

조상 또한 우주의 일부이니 그 또한 우주이기 때문이다.

 

늘 찾아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꿈이다.

 

고인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는 것은

우주의 메시지이자

고인에 대해 예의를 지켜야 할 순서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며느리가 고인의 기일을 기억하여 챙기는 경우로 시작된다.

며느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며느리라도 고인의 기일을 까맣게 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같은 며느리라도 고인의 기일을 가슴속에 새겨놓는 경우가 있다.

 

고인은

직접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혼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원한다.

 

벚꽃과 라일락이 피는 계절이다.

 

라일락을 꺾어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아끼는 마음을 담아 전달해줄 수 있다는 것은

받는 이나 주는 이나 감동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 그것을 주고받는 대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라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

 

영혼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닌

작은 것들이라도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몸에서 자기가 나오는 법이다.

 

큰 게 아니다. 작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너의 한마디가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도 순서를 지켰고 우주 자체도 순서가 있다.

 

순서 안에서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

 

순서 없이 막무가내로 하는 것 같지만 우주 자체가 순서이다.

 

무극에서 꺼내써도 무작위로 꺼내쓰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꺼내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순서라는 것을 몰라도 우주는 순서에 입각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2022418일 월요일

 

청아 & 청아당 엄 상 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