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이라고 해서 완전한 진공상태는 아니다
무형이라고 해서 다 무형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무형이다.
프로그램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
무형도 유형처럼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공이라고 해서 완전한 진공상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진공 안에 또 다른 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요의 극점 또한 우주의 가장 안쪽을 의미하기는 하지만
우주를 압축해놓은 무진공의 진공상태는 아니다.
다만 온 우주를 밝히는 빛의 가장 안쪽을 파고드는 곳이자
법열이나 희열 같은 그런 느낌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우주적인 현상일 뿐이다.
보다 단단한 기의 퇴적층 같은 개념으로 접근하면
법열을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느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공간에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질이 있기에 이 우주가 존재하듯이
존재 그 자체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바람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묵도 하나의 행위로 서 있듯이
반드시 요동쳐야만 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적인 모습 속에서도 동적인 모습이 살아 움직이고 있듯이
동적인 모습 속에서도 정적인 모습이 살아 움직이고 있듯이
이 둘은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주고받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진공은 또 다른 진공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공이면서 진공이 아닌
무진공상태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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