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선악, 고요의 극점, 보이지 않는 손길에 대한 오해
『공존하는 선악』이
책의 형태(개인복사본)로 탈고된 날짜는 2007년 7월 5일이다.
아마도 이때가 처음으로 책의 형태로 발표된 날일 수도 있다.
인체전자석의 원리, 단광기기, 고요의 극점, 보이지 않는 손길에 대한 의문이나
이론적으로 도출된 날은 1986년이다.
『공존하는 선악』이 뒤늦게 발표된 것은
사실적이면서도 오랜 경험적 바탕이 필요했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공존하는 선악』은 신과 성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과 성자들을 이야기하다보면
당연히 종교와 관련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무교였다가
기독교를 선택하게 된 것도 다 이러한 맥락에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직접 듣고 보고 배우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교회를 나가고 있는 이유이다.
『공존하는 선악』은
신과 성자들을 모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신과 성자들의 힘으로도
악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원인을 궁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출된 이론이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다 인정하면서
그동안 찾아내지 못한 것을 찾아낸 이론일 뿐이다.
『공존하는 선악』이나 ‘보이지 않는 손길’에 대한 평가는
후세에 맡길 일이지만
그 누군가는 의문을 풀어야하겠기에 먼저 손을 댄 것뿐이다.
‘고요의 극점’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전개한 것뿐이다.
다만 죽어서 그러한 세계에 영원히 묻혔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우주의 무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기에
자주 말하고 있는 편이다.
필자가 신과 성자들에 대해 말할 때는
천벌과 지옥에 갈 각오로 또는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쓰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진실이 어떠하든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일이기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기존의 관념엔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기존에 있는 것은
다 그대로 인정하면서 펼치는 이론이기에
여기에 크게 좌우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것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에
그에 관해 쓰지 않은 것뿐이고
인과관계나 단점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말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필자도 좋은 것은 다 알고 있다.
다만 말을 안했을 뿐이지
좋은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가 중생 그 자체를 부처라고 말한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범부야말로 진실로 부처 같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기에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표현을 안 하면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서
따로 지면을 할애하여 여기에서 밝히고자 한다.
노파심에서 언급하는 말이지만
가끔씩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밝히는 바이니
다른 건 몰라도 이 사실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필자도 잘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왜? 라는 의문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왜? 라는 의문을 풀기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달려들어야만 풀리는 문제이다.
그냥 생각으로 푸는 것이
왜? 라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치열한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도출해내야 하기에
그 과정은 수행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왜? 라는 의문은 계속해서 품는 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왜? 라고 품기 이전에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해보라는 의미가 더 큼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경험이나 현실을 바탕으로 이론이 도출되는 것이지
허공에 있는 실을 뽑아다 쓰는 것은 아니기에
이점 또한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쓸 생각이다.
그렇다고 매번 이러한 글을 쓰면서
사죄하거나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말은 할 수 없기에
이번만 밝히고 더 이상은 밝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혹시라도 『청아당 인체전자석학회』에
올라오는 글을 보거나 이미 올려진 글을 볼 때
이러한 의문이 들 때는 이점을 참고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부족한 글이지만
늘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2019년 3월 5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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