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오늘의 출애굽10 - 스스로 있는 자(1)
1월 1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 : 주승중 위임목사
제목 : 모세와 오늘의 출애굽10 - 스스로 있는 자(1)
http://w3.juan.or.kr/tv/player.asp?sid=20580
본문 : 출애굽기 3 : 13~15
전도사의 쪽지
요한계시록 3:20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개구쟁이의 쪽지
창세기 3:10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 들어가는 말 : 모세의 변명들
모세의 다섯 가지 변명들
1) “내가 누구이기에”(출 3:11)
2)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출 3:13)
3) “그들이(이스라엘 백성들) 나를 믿지
않고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출 4:1)
4)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입니다”(출 4:10)
5)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출애굽기 4:1
1.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애굽기 3:13
13.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2. 모세의 질문과 하나님의 대답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
→ “에흐예”는 “~이다”라는 뜻으로
영어 be 동사에 해당하는 말로서
“나는 존재한다”(I am) 또는 “나는
~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세르”는
that, who와 같은 관계대명사이다.
따라서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는
“I am that I am”,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1:3
3. 만물이 그로 말마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1:8
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요한계시록 1:17
17.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요한계시록 22:13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시편 22:22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3. 나는 스스로 있는 자
1) 자존자
2) 영원하신 분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존재하실 분
(I will be who I will be)”
출애굽기 3:15
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4. 스스로 있는 자 : 나의 하나님
요한계시록 1:8
8.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나는 하나님이 좋다.
그 분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신학자의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바로 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 파스칼 -
# 예화
: 광야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
그리고 확신
5. 나가는 말
: 스스로 있는 자,
나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자
전도사가 아파트 문 앞에서 귀를 기우리니
TV소리가 들려 문을 두드리니
갑자기 인기척도 들리지 않은 채 대답이 없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전도사는 문에다 쪽지를 남겨두고 나왔다.
전도사의 쪽지
“요한계시록 3:20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TV를 보던 개구쟁이는 전도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쪽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서 전도사한테 달려가 전해주었다.
개구쟁이의 쪽지
“창세기 3:10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웃자고 한 소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한다.
이제도 있고,
예전에도 있었고,
장차에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한마디가 하나님의 존재를 대변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존재하실 분
(I will be who I will be)”
파스칼은 ‘나의 하나님’이기에 좋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조건 없이 좋기 때문이다.
마치 자연이 있어 좋은 것처럼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주승중 위임목사께서 설교한 내용 중 일부를 재정리한 것입니다.
2019년 1월 13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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