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고요의 극점에 대한 오해

청아당 2018. 11. 6. 15:25

고요의 극점에 대한 오해

 

○○

열반

우리가 수행하는 목표가 불가에서처럼 열반에 들기 위함이 아닌가요?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여윤회하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 아닙니까?

 

고요의 극점에서 산화하고 싶어도 그것도 안 되고 결국 육체로 돌아온다면

다른 더 큰 목적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고요의 극점이 종착역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깨달음이나 열반이나 궁극의 세계에 드는 것은

영적인 세계입니다.

 

현실과 이상은 분명 다릅니다.

 

비록 고요의 극점에 들어 영원히 산화되어

다시는 우주의 그 어느 곳에도 귀착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러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육체를 지닌 상태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열반에 들거나

사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동서양의 우주관이 다 다르고

종교관의 세계관이 다 다르고

인간의 이념이 다 다르고

신의 이념이 다 다르고

우주신인 하나님의 신념조차 다 다르다보니

진정으로 수행을 통해 그러한 세계에 안착되어있는지는

사후세계에서 확인해 보아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이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순진무구할 때가 많습니다.

 

글로 전해듣거나

말로 전해듣거나

선문답이나 기타 다른 방법들을 통해

그러한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조차도 착오를 일으키고

인간에게 각종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진정으로 그러한 세계가 우주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중하게 살펴보아야할 때라고 봅니다.

 

 

선각자들이 말한 내용이라고 해서

액면 그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

판도가 바뀌는 경우와 같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무지몽매(지식인이어도 마찬가지)한 사람들을 향한 일갈이기에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이다가는

정말로 그러한 사람들과 똑같은 상황에 빨려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말로 행하는 깨달음의 내용은

허구적인 내용이나 드라마틱한 내용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직접 그러한 세계에 들어가 본연의 모습은 엿볼 수가 있지만

영혼이 아닌 육체를 지닌 채 그 모든 현상들을 다 경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알 수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말장난이 유독 심한 곳입니다.

 

 

진짜로 열반에 들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주가 그렇게 좁고도 간단한 구조입니까?

 

구역별로 또는 영역별로 구분되어져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서양 성자들의 말이 다 다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후세계관은 왜 이리도 다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알아내고 깨닫는 것이 수행이라고 봅니다.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믿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벽을 깨뜨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관념을 다 부숴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조차 짓밟으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면

우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8116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