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살기위해선 공존하는 선악의 덫에 걸리게 되어있다

청아당 2018. 6. 8. 08:55

살기위해선 공존하는 선악의 덫에 걸리게 되어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또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

공존하는 선악은 갈등을 일으킨다.

 

선을 선택해야할지

악을 선택해야할지

아니면 그 중간을 선택해야할지는

전적으로 목숨이 달려있는 쪽으로

기울게 되어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한

살기위해선 공존하는 선악의 덫에 걸리게 되어있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기에

그 결정은 오랜 시간을 끌 시간이 없다.

 

설사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공존하는 선악은 살길을 위해 선택되어질 것이고

그것의 결과 또한 극명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선을 선택하든

악을 선택하든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반드시 선을 선택했다고 해서 선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없고

반드시 악을 선택했다고 해서 악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없다.

 

공존하는 선악은 의지와 상관없이

선이 악의 작용을 할 수도 있고

악이 선의 작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이 둘의 중간에 끼여

중용의 입장에서

중화시키는 역할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선이 선의 작용을 할 때도 있고

악이 악의 작용을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행동이나 결정들이

순기능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공존하는 선악이다 보니

어떤 때는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존하는 선악은

삶에 있어서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삶에 있어 공존하는 선악이 빠져버리면

나사 없는 톱니바퀴와도 같아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존하는 선악은

필요악이라 할 만큼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공존하는 선악은

우리들의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줌과 동시에

슬픔과 뼈아픈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공존하는 선악은

우리들의 미래를 밝게 해줄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자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인류와 우주의 역사를 묵묵하게 써나가고 있다.

 

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이자

우리들의 삶이 녹아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201868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