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선악이란(전문2)5-1(비공) / 인권결의안
선을 선이라 생각해야하는데
선이라 생각하지 아니하는데 문제가 있고
악을 악이라 생각해야하는데
악이라 생각하지 아니하는데 문제가 있다.
악의 축으로 빠져드는데도
선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고
선의 축으로 빠져드는데도
악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인간의 성향이 본래부터 선하다보니 그렇고
인간의 성향이 본래부터 악하다보니 그렇다.
이 둘은 늘 함께 하며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어
언제 어느 때
한 몸처럼 움직일 줄 모르기에
서로 다투며 바람처럼 흩어지다가도
서로 화합하며 구름처럼 모여들기도 한다.
공존하는 선악은
선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언제 어느 때 발생할지 모르는
악의 시스템 때문에
선을 선이라 말하지 못하고
악을 악이라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법정에 서거나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선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본의 아니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폐단에 의해
선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이 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할 때는
일국의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단죄를 받게 되어있는 것이 인간적인 시스템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물론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공존하는 선악을
선택하거나 무시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공존하는 선악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절대자조차
공존하는 선악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도록 방관하거나
방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성자든
현자든
절대자이든
더구나
우주와 자연조차 죄를 짓는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빌면 될 일이고
잘못을 안했으면 칭찬을 들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면 간단한데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처럼 복잡하고 추한 것도 없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처럼
용서와 화해 등
이 모든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선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반드시 선이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반드시 악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이 둘은 공존하는 선악처럼
동시에 존재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 때
그 진가를 발휘하기에
어떤 때는 동적인 측면에서 좋은 것이고
어떤 때는 정적인 측면에서 좋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파면되거나 구속되어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끝까지 부정하거나 부인하며
무죄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기준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죄가 안 되기도 한다.
이는 상대에 따라
또는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음해성 논란으로
접근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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