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 성리학
성리학을 논하면서
퇴계 선생과 율곡 선생의 이기론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지만
필자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거나
이기론을 집대성시킨 대학자들의 학문적 정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평가하고자하는 뜻은 없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이기론하고
학자들이 생각하는 이기론에는
합치시킬 수 없는 틈새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혀두는 것이지
반드시 필자의 생각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 뜻이 정확하게 학문적으로 정립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필자와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은
둘 중 어느 하나는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되어질 수도 있기에 필자의 생각을 밝혀두는 바이다.
그리고 같은 학술적 주제를 갖고 평가하는 학문이라 할지라도
저자에 따라 서로 다른 이론이 존립할 수 있듯이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 있어 나름대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물론 두 대학자들의 방대한 저서를 빠짐없이 읽고 분석해가며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논의해야하겠지만
시간관계상 그 핵심부분만 다루다보니
오히려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어질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1558년(명종 13년) 23세 때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58세인 퇴계 이황과
성리학을 논할 만큼 학문적 깊이가 성숙되어져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학자다운 면모가 돋보이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 또한 나이를 초월하여 학문을 논하고 있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학자다운 면모가 돋보이고 있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성리학을 논하면서
퇴계와 율곡은 극진한 예우를 다해가며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어나갔다.
인간사(人間事)든
우주사(宇宙事)든
살아있는 한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좌절감에 빠져들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자 행복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고
죽는다는 것은
추함과 불행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생로병사의 길목에서 선택해야할 일은
본인이 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우주 손인 창조자이거나
우주를 관장하고 있는 최대 권력자로
귀결되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연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우주는 필연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기(氣)를 다스리고 있는 이(理)는
우주 창조자로 보여 질 수도 있고
이(理)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기(氣)는
우주 창조자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다.
기(氣)는 빛이자 어둠이요
이(理)는 빛의 그림자이자 어둠의 그림자이다.
빛과 어둠이 있는 곳에 기(氣)가 있고
빛의 그림자와 어둠의 그림자가 있는 곳에 이(理)가 있다.
기와 이의 관계는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요
한 가족 한 지붕의 개념이다.
기(氣)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理)가 있다면
이(理)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기(氣)가 있다.
마치 남녀 간의 한 쌍인 연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온 우주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기와 이가 있기에
틈만 나면 서로를 챙겨가며
우주의 안팎을 헤엄쳐 다니거나
생사를 넘나들며 경계를 짓지 아니하고 있다.
선을 긋는다고 못 넘을 기와 이가 아니기에
선이 없다고 드나들지 못하는 기와 이가 아니기에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그 끝이 우주라 할지라도 달려가지 못할 데가 없고
그 시작이 지구라 할지라도 달려가지 못할 데가 없다.
만약에 인간이 없었다면
실재하지만 우주도 없었을 것이고
어떠한 구분이나 우주의 본질에 대해 파헤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쪼개고
포개고
나눠가며
그것도 부족하여 360° 로 돌려가면서까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인간의 호기심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호기심은 인간을 발전시켜나가는데 있어
가장 큰 매력덩어리이자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기에
호기심을 인간의 내면에서 빼버린다면
더 이상 우주의 비밀을 파헤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간이 있기에 우주가 있는 것이고
우주가 있기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 우주는 영원할 것이고
우주가 존재하는 한 인간 또한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형체를 지닌 인간이든
그것이 형체를 지니지 않은 인간이든
우주 내에는
인간의 생각과 결합된 내용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영역들이 많다보니
인간을 빼놓고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천지인의 중심에 서서
인간의 사유와 철학을 바탕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우주를 이해시키는 데에 있어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인간이 생각한데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취할 것이며
더 이상 무엇을 버릴 것인가?
과거부터 그래왔지만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고
인간의 생각이 없는 곳에는
우주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있는 곳에 기가 있고
기가 있는 곳에 마음이 있듯이
마음은 우주의 중심을 꿰뚫거나
우주 밖의 세계까지도 드나들 수 있는
무소부재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다 마음의 속성까지 파헤치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확대되어지거나
우주의 안팎에 새로운 가설들이 등장할 수도 있어
마음이야말로
이 우주를 대표하는 부산물이자 주된 뿌리로써
마음이 있는 곳에 우주가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자연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마음이 없다면 성리학도 없을 것이고
마음이 없다면 우주도 없을 것이고
마음이 없다면 자연도 없을 것이고
마음이 없다면 삶의 뿌리도 없을 것이다.
부연해서 말하면
마음이 머무는 곳에 기가 있고
기가 머무는 곳에 마음이 있듯이
내부적으론 내면의 눈인 심안을 통해 기를 볼 수가 있고
외부적으론 남극의 오오라인 기의 향연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장쾌하고 우주적인 잔치인가?
빛이 어둠에 갇혀도 탈출할 수 있듯이
빛에 갇힌 어둠도 탈출할 수가 있다.
우주의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주적인 현상은
마음이 있기에 가능하고
기가 있기에 가능하고
이가 있기에 가능하고
빛과 어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입장에서 살펴보면
인간이 정하고 있는 기준과
우주가 정하고 있는 기준은
분명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입장에선
인간이 정해 놓은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 되겠지만
우주의 입장에선
인간이 정해 놓은 기준대로 살아가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언제든지 우주의 입장에선
인간의 기준을 초토화시켜버리거나
의미 없는 기준으로 허물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불변의 진리를
고정시켜놓지 않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풀이되어지고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자연과 함께 우주의 존재성은
인간의 생각에 의해 존재하고
인간의 손에 의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생각인가?
분명 우주 속에 갇혀있는 인간이지만
우주조차도 인간의 생각에 긍정의 신호를 보내며
인간이 생각한 데로
우주가 존재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뜻대로 우주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주의 재량권 범위 내에서
일정부분은 인간의 공로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비약해서보면
이의 세계는
우주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우주의 기운이라고 한다면
기의 세계는
우주를 채워나가거나 비워내는 역할 때문에
우주 창조자의 뜻에 따라
그 모양을 천변만화의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염려되는 부분은
기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이에 대한 작용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여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을 수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잠시 기의 존재와 기의 작용에 대해 살펴보자.
그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비롯하여 우주의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어떤 때는 바람처럼 달려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구름처럼 달려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산처럼 달려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잔잔한 파도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빛의 폭풍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용오름 현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번개행공처럼 뇌성벽력(雷聲霹靂)을 동원하여
온몸에 우주적인 감전현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주 대폭발인 빅뱅처럼 팽창하는 우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빛도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빛이 빠져나갈 수 있는 수정된 블랙홀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주의 시작점에서 우주의 끝점으로 이동해가며
온 우주를 대낮처럼 밝게 하기도 한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블랙홀과 수정된 블랙홀을 비교 분석해 보았을 때
분명 오류가 있지만
우주의 기준에서 보면
블랙홀의 이론이든
수정된 블랙호의 이론이든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되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법칙에서의 판단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스스로 작용하여 이루어진 것!
이 둘의 관계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초월적 우주관이기에
그 누구도 인간의 기준에 짜맞추려하거나
새로운 가설이 나올 때 무너지고 있는 수학의 경우와 같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고요의 극점에 도달하기 전
현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상적인 세계 또한
우주를 채우고도 남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의 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라 할 만큼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氣)가 있는 곳에 이(理) 또한 함께 존재하기에
이 둘의 관계는 남녀 간의 밀월처럼
한마음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리학을 완성시킨 대학자들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와 이에 대해 연구해가며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놓았지만
또 다른 관점인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세계를 접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와 기의 작용에 대해
긍정을 부정으로 바꿀 수도 있고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수도 있어
색다른 견해로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보는 각도에 따라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이와 기의 작용에 대해
한순간에 뒤엎어버릴 수도 있기에
충돌할 위험 군을 미리 제거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의 이론체계가
그만큼 허술하거나 문제가 많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학문적인 깨달음을 동원하여
성리학을 정리해나가고 있는
그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기론(理氣論)에 대해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들이 등장하는 것은
유교를 숭상하는 유학자들이
새로운 반전으로 유교를 재구성하고자하는
고민 끝에 탄생한 성리학 때문에 발생한 일이고
유불선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해가며
깨달음을 앞세운 사람들의 관점을 동원하여보면
그 뿌리는 같다하지만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성리학의 이론체계가 어떤 때는
선도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 확장되어 사상의 폭을 더 넓게 잡아주거나
반드시 기와 이의 세계를 경험하거나 체험해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학술적인 연구만으로도 정립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지구와 우주의 안팎을 제집 드나들듯이 연구해가며
이론적으로 정립해놓았다는 것은
한편으론 획기적인 변화의 틀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나
문제는 고도의 수행을 통해 얻어진
이와 기의 세계가 아니기에
그 허점은 곳곳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명확한 기준 없이 막연한 상태에서
우주의 뿌리를 정리하다보니
그 정체성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행자들의 사고방식과 유학자들의 사고방식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지고 있기에
이러한 현상들이 반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론 학문적인 깨달음 또한 놀라울 정도로
그 업적이 인정되어지거나
실생활에서 보여준 치밀함 때문에
지금껏 그 명맥을 이어왔겠지만
언제든지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수행자들의 생각이 살아있는 한
우주를 꿰뚫어보거나
학자들의 정리에 문제가 많음을 지적할 수 있기에
이러한 논란은 해결되지 않은 채 미제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리학(性理學)에 있어
기보다 이를 중요시하며 객관적 실재로써 접근한 퇴계 이황(1501~1570)과
기와 이가 불가분리인 한 몸이자 일심동체로 접근한 율곡 이이(1536~1584)의 학문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지고 있다.
더구나 35세의 차이로
성리학에 대해 논하기 위한 약관의 나이인 23세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뻘인 퇴계 이황과 설전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당돌하면서도 자신의 사상체계가 완성되어져있다는 것은
그만큼 분골쇄신하고자하는 학문적인 연구와
실천적인 연구가 뒤따랐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퇴계 이황은 동방의 주자라 불리울 만큼
주자학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연구해온 이론가이자 실천가라 한다면
율곡 이이는 동방의 공자라 불리울 만큼
유불선에 대해 연구하고 우월적인 정치적 입지와 함께
현실적인 학문을 더 선호하였기에
유불선의 최대 단점인
무위(無爲)와 현실도피적인 무력감에 대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크게 경계해야할 점은
학문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시되어야할 점은
수행과 함께 체험을 통한 학문적인 이론을 정립하는 일이라고 본다.
기의 다양한 모습이나 기의 활동범위를 알지 못한 채
단순히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미루어보면
체험이나 경험 없이 가설을 통해 정립된 학문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을 논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호흡을 통한 수행이 이루어지고난 다음에
학문적으로 정립해도 늦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검증되지 않은 학문은
앞으로 계속해서 도전을 받거나 신경써야할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뿌리를 캐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에 근접해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氣)나 이(理)를 해석하는 일보다는
기의 세계를 직접 체험해보거나 기를 조종하고 있는 이의 세계를
영적감각으로 또는 심안을 통해
우주적인 느낌을 경험해보아야만 학문적인 이론을 정립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와 이의 세계를 인간의 심성과 도리
그리고 학문적인 이론에 접목시켜 짜맞추려하거나
궁극적인 우주의 원리에 적용하려는 발상 그 자체는 좋지만
정확히 이와 기의 작용이 어떻게 운행되어지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 그 자체만으로도 천변만화로 변신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행동반경이 주어져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코 기(氣)를 기라고 말하거나 이(理)를 이라고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의 세계를 알지 못한 채 이의 세계를 알려는 행위는
한마디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빠져들 수밖에 없음을 경계해야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있어 이론적인 깨달음 또는 학문적인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이기사상(理氣思想)에 대해 충분하게 경험하고 확인해보려면
깊이 있는 수련을 행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수련을 통해 이기의 본체를 경험하고
이(理)가 존재하기 이전에 기(氣)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하고
또는 기가 존재하면서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핵심적인 부분을 빠뜨린 채
학문적인 연구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학문적인 접근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그 근본을 먼저 파헤치는 것이 우선 순서인 것처럼
이와 기의 존재는 마치 공존하는 선악처럼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이자
체계화된 우주적인 질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를 안다는 것은 자연을 아는 일이자 우주를 아는 일이기에
기(氣) 이전의 세계인 이(理) 또한 자연을 아는 일이자 우주를 아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기가 형상화된 모든 것을 대표한다면
이는 형상화되지 않은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기(氣)이지만
분명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이(理)이지만
이 우주에는 기와 이가 존재하며
그 시작과 끝을 주관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물론 학문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우주를 대표하는 기의 세계와 이의 세계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경험이나 체험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설득력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이 주리론(主理論)으로 우주만물의 근원을 발표한 것이나
율곡 이이가 주기론(主氣論)으로 우주만물의 근원을 발표한 것이나
다 같은 견해이지만
보다 정밀하게 학문적인 접근방식을 살펴보면
주리론과 주기론의 발상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표현의 차이와 강조의 차이가 다를 뿐
그 어느 것이든 결과론에 있어선 서로 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우주에는 이와 기가 존재하고 있고
기를 다스리는 이와
이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理)가 기를 다스리든
기(氣)가 이의 다스림을 받든
우주생성과 소멸의 원리는
그 어느 편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다 같은 한 가족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듯이
우주에서의 이기론(理氣論)은
어쩌면 불필요한 구분이지않은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현상은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그 사람만을 위해 따로 존재감을 부각시켜주거나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안다면
이기론(理氣論)의 뿌리이든
이기론(理氣論)의 줄기이든
우주 그 자체는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져도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눈 한번 크게 뜨고 살펴보거나
마음 한번 크게 먹고 살펴보면
어떠한 형태이든지간에
기는 이의 다스림을 받고 있고
이는 기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로 귀결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의 조합과 화합능력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운행되어지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주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불멸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고
우주불멸에서 우주멸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이기론(理氣論)의 시작과 끝은
그 어느 누구도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형체가 모였다가 사라지거나
사라진 형체가 또 다른 형태로 모이기도 하는
이 우주가
예측불허의 존재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주리론이든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주기론이든
중용의 도까지 끌어들여가며 경계를 짓지 않겠다는 것은
이 우주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되어 탄생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고 보면
태극(太極) 이전의 세계를 태허라고 한다면
태허(太虛) 이전의 세계를 이(理)라고 명명 지을 수가 있다.
그에 반해 태극의 세계를 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와 기이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우주에너지이자 우주의 법칙이기에
형이상학적인 이와 형이하학적인 기를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이 없거나
실천적 수련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함부로 정립시킬 수 없는 난해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같다.
특히 기의 입장에서 보면
형이상학적인 존재이자
형이하학적인 존재로 양립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의 입장에서 보면
형이상학적인 존재이지만
기를 통해
형이하학적인 존재로 부각되어질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인간의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며
우주적인 판단에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이든
형이하학적이든 결코 중요한 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생각의 차이로 벌어지는 일이다보니
이나 기가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부각되어지거나
형이하학적인 존재로 부각되어지거나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련을 통해 이와 기의 세계를 접하다보면
이 둘의 원리가 분명하게 구분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련 초기에는 우주에너지인 자기장을 느껴가며
고요의 극점을 향해 고군분투하지만
수련 막바지에 이르다보면
우주를 뒤흔들 만큼 폭발적인 기의 작용과 함께
원기둥모양인 인체전자석의 원리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우주의 뿌리에 대해
더 깊고 오묘한 이기론(理氣論)에 대해
이해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주에는 우주에너지 이전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깨달을 수가 있기에
그것도 우주 창조자의 손길로
기 이전의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이의 세계를
마치 보이지 않는 우주 손에 의해
연결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것은
기의 세계도 중요하지만
이의 세계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이론적인 깨달음이나 학문적인 깨달음은
가슴이나 머리로 느낄 수가 있겠지만
진정한 깨달음은 대우주를 축소시켜놓은 소우주를 발견해야만 가능하다.
특히 자정작용을 거친 후
순수 그 자체의 세계인 심안(心眼)에서 우주를 바라보면
이와 기의 세계를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이(理)는 보이지 않는 우주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면
기(氣)는 보이지 않는 우주 손에 의해 작용되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실제로 기를 느낀 후 이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만약에 기가 없다면 이도 없었을 것이요
이가 없다면 기 또한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는 이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이는 기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와 이는 상극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이기에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기가 되었든
그것이 이가 되었든
이 우주상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기보다 이를 앞세운다는 것은
이론적인 깨달음이나
학문적인 깨달음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점이지만
그 순서를 느껴본 사람들은
기를 떠나서 먼저 이를 느낀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사건과 같기 때문에
반드시 기를 먼저 느낀 후 고요의 극점에 도달하다보면
기와 이의 세계가 동시에 다가와 안부를 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기보다 이의 세계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접근방식은
학문적인 깨달음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실제로 기의 세계와 심오한 이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유신론과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조화는
늘 우리들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숨 쉬고 있어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신의 존재를 긍정하거나
그에 상응하지 않고
함께 가야할 운명이자 숙명이라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를 거부할 수 없듯이
보인다고 존재를 긍정할 수 없듯이
이 둘의 움직임은
지구의 시작점에서 시작하여
우주의 끝점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론적인 깨달음이나 학문적인 깨달음은
딱 하나가 부족하지만
실천적인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그 하나가 나를 비롯하여
우주 전체에 분포되어져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천적 경험을 통해 학문화시켜 논 이론이라는 사실이다.
경험과 이론이 결합하여 이루어낸 학문적인 성과야말로
난공불락의 성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듯이
경험과 체험 그리고 이론의 결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더구나 그것이 기와 이에 관련된 사항이라면
반드시 고도의 수련을 통해 체험하거나 경험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고도의 수행을 도외시한 체 학문적인 성과만을 바란다면
그 누구든지 간에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서경풍수지리학회장이자 서경대 김정인 교수에 의하면
조선의 3대 석학을 꼽으라면 퇴계 이황(1501~1570), 율곡 이이(1536~1584),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생각난다. 안동에 가면 퇴계 유적지가 있고, 강릉과 파주에 가면 율곡의 유적지, 전라도 강진과 경기도 남양주에 다산 유적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유적지에 모여들어 성현들의 인생과 사상을 더듬어 본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이 공직생활을 마치고 은둔하기에 좋은 장소로 잡은 곳이다. 퇴계는 자신이 서당자리를 잡게 된 경위를 “도산잡영병기”에 기술하고 있는데 이곳은 산이 그다지 높고 크지는 않지만, 터가 넓고 형세가 빼어나며 방위를 보아도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주변의 산봉우리와 계곡이 모두 이곳을 향하여 읍(揖)하며 감싸 도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낙동강물이 좌에서 우로 횡류 하는데 백호가 겹겹으로 역관해주는 용수의 배합이 뛰어나고, 양택이 기본요건인 배산임수, 전저후고, 전착후관 3대 조건을 만족한다.
퇴계선생 유적지, 율곡선생 유적지, 다산 선생유적지 모두 풍수적 명당에 위치한다.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선조들의 발자취와 사상을 돌아보고 풍수지리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규봉(非山非野) 사는 이야기 블로그에 의하면
http://blog.daum.net/0118983530/7360094
우리나라 역사상 '퇴계(退溪)' '율곡(栗谷)' 두 인물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인문학적 역량의 중량감은 훨씬 덜 할 것이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世代)라고 하니 율곡(栗谷. 1536~1584)은 퇴계(退溪. 1501~1570)보다 한 세대의 후학(後學)이다. 퇴계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조종으로 주리론자(主理論者)이고, 율곡은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조종으로 주기론자(主氣論者)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전개된 당쟁(黨爭)의 흐름인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대립도 이 두 인물의 학풍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조선시대의 정신 문화사를 거론함, 이 두 인물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율곡(栗谷)은 일생을 통해서 단 한번, 그것도 결혼하던 해 처가(妻家)가 있던 경상도 성주(星州)에 다녀오던 차에 안동(安東)을 들러 2박 3일 동안 퇴계와 함께 지낸 것이 모두이었다. 율곡의 나이 23세요, 퇴계는 58세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짧은 만남이었건만 두 사람은 일생일대의 만남을 가졌고, 상대방의 인품과 학문을 알아보고 사제(師弟)의 연을 맺기에 이르렀다.
퇴계는 동인(東人)의 조종(祖宗)이요, 율곡은 서인(西人)의 조종(祖宗)이라 두 사람이 마치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인 갈등이 있은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나 범인(凡人)들의 경지를 뛰어넘어 성인(聖人)의 풍모를 지녔던 이들 간에 그러한 소인배적(小人輩的) 갈등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학파(學派)를 중심으로 정치적 세력을 형성한 후학들의 소아적(小兒的) 파쟁(派爭)이 문제이었던 것이다.
기원전 506년, 중년의 공자(孔子)가 이미 인품과 학식으로 천하를 풍미하던 70대의 노자(老子)를 찾아가 예(禮)를 다하여 물었듯이, 1558년 봄에 23세의 청년 율곡(栗谷)은 예안(禮安 .. 지금의 안동군 예안면)에 물러나 있던 당대 최고의 원로 석학인 58세의 퇴계(퇴계)를 찾아뵙고 학문의 길에 대하여 물었다.
퇴계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멀리 찾아온 젊은 천재 율곡(栗谷)을 정중하게 맞이하였고, 율곡은 ' 제자의 예(弟子의 禮)'로 인사를 올렸다. 퇴계는 율곡의 재능과 학식 그리고 열정에 깊이 감탄하고 무척 반겼는가 하면, 율곡 또한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이른 봄이었는데, 때마침 눈비가 섞여 내리는 날씨를 핑계 삼아 퇴계(퇴계)는 떠나려는 율곡(栗谷)을 거듭 만류하여 이틀 밤을 묵게 하였다. 노학자 퇴계는 젊은 율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천금 같은 2박3일 간, 두 사람은 함께 거닐며 한담을 나누고, 경서(經書)를 앞에 두고 깊은 뜻을 따졌으며, 밤에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시면서 담소를 하였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니 두 사람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오랜 지기(知己)처럼 헤어지기를 못내 아쉬워했다.
인류가 낳은 대성인이자 대사상가인 공자(孔子)와 노자(老子)의 만남이 세기적인 대사건이라면 한국이 낳은 위대한 철인(哲人)이자 대사상가인 퇴계와 율곡의 만남 역시 우리 역사상 최고이 대사건(大事件)이었다. 비록 2박3일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율곡은 퇴계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 내가 학문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사나운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여 가시밭길의 거친 들판에 있다가 방향을 고쳐서 옛길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실로 퇴계선생의 계발(啓發)에 힘입은 것이다 ' 라고 율곡은 술회하고 있다.
이후 두 사람의 학문적인 혹은 인간적인 교우는 퇴계가 먼저 타계(他界)할 때까지 계속된다. 편지를 통하여 학문에 관하여 질의와 답변을 나누는가 하면, 시(詩)를 통하여 서로 간의 안부와 심회를 전하기도 하였다. 퇴계가 임금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 머무르게 되면 율곡은 으레 찾아가 상면하곤 하였다. 35세 연상(年上)이었던 퇴계의 부음(訃音)을 듣자, 율곡은 위(位)를 만들고 곡(哭)하였으며, 외실(外室)에서 거처하며 스승의 예(예)로 상(상)을 행하였고, 아우를 보내어 문상(問喪)하도록 하였다. 또한 만시(輓詩)를 지어 죽음을 애도하였다.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두 거봉이었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달랐지만 학문적 관심의 초점도 역시 달랐다. 퇴계의 학문이 ' 수양론(修養論) '을 중시하는 입장이라면, 율곡은 ' 경세론(經世論) '에 역점을 두었다. 곧 퇴계(退溪)가 수양과 인격 도야를 위한 학문을 추구하였다면, 율곡(栗谷)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였다.
성리설(性理說)에서도 퇴계는 ' 이(理 ..이치) '가 ' 기(氣 .. 기질)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주리(主理)적 경향인데 대하여, 율곡은 이치(理致)와 기질(氣質)은 똑같이 중요하다고 보는 주기(主氣)적인 경향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퇴계와 율곡 두 사람을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 남인(남인)과 서인(서인)으로 나누어 말한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은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후세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지(立地 .. 학문과 권력)를 위하여 다분히 의도적으로 구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두 인물은 연령적, 지역적, 학문적 차이(差異)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 만나서 한편은 스승을 대하듯이, 다른 한 편은 아끼는 후학(後學)으로 대하면서 가슴 벅찬 교유를 하였다. 연로(年老)한 퇴계가 먼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두 사람의 사귐은 끝났으나, 우리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맑고 아름다운 만남의 주인공들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성리학(性理學)이란?
유교에 철학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 확립한 새로운 학풍으로 자리 잡은 학문이라고 한다.
이기론(理氣論)에 있어 주리론과 주기론은 모두 이와 기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이와 기의 상호관계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은 같다. 그리고 이기(理氣)에 관한 가치론적 설명에서 기보다 이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分開)와 혼륜(混淪)에 대한 강조의 차이에서 보듯이, 주리론이 '이기결시이물'(理氣決是二物)이라는 분개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기원불상리'(理氣元不相離)라는 혼륜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리론에서 이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성격이 명백하게 드러나며, 또 이와 기의 차별성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주기론에서 이는 기와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객관적 실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기의 법칙성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또 사단칠정론에서 보듯이, 이에 대해 주리론에서는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는 데 반해, 주기론에서는 운동능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주기론에서는 이발을 부정하고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만을 인정하는데, 그것은 이는 정의(情意)·운용(運用)·조작(造作)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발하는 것은 기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기론은 기의 운동을 자기 원인에 의한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사상과 동일한 내용을 갖지만, 기의 운동을 내면에서 규제하는 원리로서의 이, 즉 '소이연'으로서의 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기일원론과도 차이가 있다.
심성론에서도 주리론과 주기론이 모두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를 강조하는 주리론이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별개의 존재로 파악하는 데 반해, 이기의 혼륜을 강조하는 주기론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 별개의 것이 아니며, 다만 기질지성 가운데 이의 측면을 가리켜 본연지성이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의 운동능력을 인정하는 주리론에서는 '성발위정'(性發爲情)의 논리에 따라 사단은 본연지성이 발한 정으로, 칠정은 기질지성이 발한 정으로 설명하며,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을 갖춘 심은 이기의 합(合)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의 운동능력을 부정하는 주기론에서는 정을 '심지동'(心之動)으로 파악하여 '심발'(心發)·'성불발'(性不發)을 주장하게 되며, 심과 성의 관계는 '동하는 것은 심이고, 능히 동하게 하는 소이는 성'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심을 발하는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이 이론에서는 심의 허령(虛靈)한 지각작용의 본질을 기로 단정하고 성은 심 가운데 갖추어져 있는 소이연·소당연의 원리로 이해하여 '심시기'(心是氣) 혹은 '심즉기'(心卽氣)를 주장하게 된다. 이것은 주리론에서 심을 이기합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성리학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일적인 세계관을 확립함으로써 유교적인 도덕적 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학문이다. 따라서 주리론과 주기론의 이기·심성론의 차이는 결국 수양론의 차이로 귀결된다. 주리론의 경우 심 내부에 존재하는 천부적인 선한 본성(본연지성), 곧 이의 존재와 그것이 발한 사단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양론에서도 본연지성을 제대로 지키고 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선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본연지성을 제대로 지키고 발현하기 위한 수양 방법을 가리켜 '거경'(居敬)이라고 했으며, 주리론의 수양론은 이 '거경'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었다. 그러나 주기론에서는 심 내부에서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은 서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모든 의식과 감정은 외계 사물의 감응에 의하여 심 내부의 기가 동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반드시 기를 타고서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도덕적 실천을 위해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물에 감응하는 심 내부의 기질을 선한 것으로 변화시키면 자연히 인간의 선한 본성, 즉 본연지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기호학파(畿湖學派) - (경기·황해·충청·호남 일원)
조선시대 유학파의 하나학술적으로는 이이(李珥)의 학설을 따르는 주기적(主氣的) 경향의 성리학자들을 말한다. 주기파(主氣派)라고도 한다. 주리설(主理說)의 종주인 이황(李滉)은 예안(禮安)의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근거지로 후진을 양성했던 관계로 그를 따르는 학자들은 주로 영남지방에 분포했다. 따라서 이들을 '영남학파'라 부르고, 주기론자들은 대부분 기호지방(경기·황해·충청·호남 일원)에 거주했으므로 '기호학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영남학파는 영남 남인, 기호학파는 서인, 17세기 이후에는 노론이 주가 되었다. 기호학파로서 이이와 동시대 인물로는 조헌(趙憲)·정엽(鄭曄)·한교(韓嶠)·송익필(宋翼弼)이 있으며, 이후로는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金長生)과 송시열(宋時烈)의 학맥이 주류를 이룬다.
영남학파(嶺南學派)
조선시대 학자 이황(李滉 : 1501~70)과 조식(曺植 : 1501~72)의 제자·문도 들이 영남지방을 학문 활동의 근거지로 삼아 형성한 학파.
조선시대 성리학에 대한 사유체계가 깊어지게 되면서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파를 말한다. 이언적을 창시자로 꼽는다. 이후 조식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명학파, 이황을 중심으로 형성된 퇴계학파, 장현광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헌학파로 나뉜다.
영남학파 학풍의 특징은 이론 중심이 아니라 실천 중심에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조식은 ‘경의(敬義)’를 몸으로 실천하여 학문과 덕행을 쌓았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절제된 가치관으로, 당시 사회 현실과 정치적 모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였다. 단계적이고 실천적인 학문 방법을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실천궁행(實踐躬行: 실제로 몸소 이행)은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경상우도의 학풍을 만들었다.
이러한 학풍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참가하여 학문의 실천을 몸소 보여준 학인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시기 영남좌도에서 이황의 덕행을 우러러 그의 학문사상을 따르려는 유파가 생겨나며 이 학파를 퇴계학파라고 한다. 퇴계학파의 학자로 기대승, 김성일, 류성룡, 이덕홍, 조호맹, 정경세, 허목, 김흥락, 곽종석 등을 들 수 있다. 이 학파는 이황의 철학 사상을 이어받아 주리설(主理說)을 완성한다. 이황 철학의 기본적 성격은 이(理)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기에는 상대적 가치를 두는 존리설(尊理說)이었으며, 본래 자리에서 실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가 실천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영남학파의 철학 특징이다.
이기이원론 [理氣二元論]
이(理)와 기(氣)라는 2가지의 서로 다른 근본 원리로 모든 사물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
성리학의 이기론 중에 특히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기일원론(氣一元論)과 구별되는 견해이다. 이기론적 세계관을 완성한 주희(朱熹)는 "이와 기는 서로 떠날 수 없으나, 서로 섞이지도 않는다"(理氣不相離 理氣不相雜)고 했다. 즉 이는 기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며 또 기는 이에 근거해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는 한편, 이와 기가 각각 독립적인 실재(實在)로서 서로 구별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구별되는 측면을 설명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했는데, 이러한 견해를 가리켜 이기이원론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특히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거나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어떤 실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기일원론에서는 이가 기와는 별개의 실재이면서 기에 내재하여 그 원리나 법칙성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기 스스로의 법칙성이나 기 스스로가 바르게 작용하도록 하는 원리를 가리켜 이라고 했다.
주희의 이기이원론을 더욱 명확한 이론체계로 재정립한 것이 이황(李滉)의 이기론인데, 그의 이론을 가리켜 주리론(主理論)이라고도 한다. 주리론의 특징적 학설인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서, 이는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이 자체의 운동으로 음양(陰陽)을 낳는다고 하여,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며 또 기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라는 점을 더욱 명확히 했다. 이러한 주리론은 이와 기의 근본적 차별성과 기에 대한 이의 선차성(先次性)·우위성(優位性)·능동성을 강조한 것이었는데, 그 극단적인 견해가 이진상(李震相)의 이일원론(理一元論)이었다. 이일원론에서는 세계의 근원적 존재나 근본적 원리로서의 지위가 이에만 인정되고, 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기일원론 [理氣一元論]
성리학의 이기론에서 이(理)를 기(氣)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으로만 파악하는 견해.
성리학에서는 사람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이와 기라는 서로 다른 2가지 근본 원리에 의해 설명하는데,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은 이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기이원론이 이와 기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이기일원론은 이러한 견해를 거부한다. 이기일원론에서는 이와 기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양자의 상호의존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특히 이는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기의 관계를 이렇게 파악하는 점에서 이기일원론은 기일원론(氣一元論)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기일원론에서는, 이가 기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실재이면서 기와 함께 만물의 생성과 운동에 관여하는 근본적 원리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라는 별개의 실재가 기에 내재하여 그 원리나 법칙성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기 스스로의 올바른 법칙성이나 기 스스로가 바르게 작용하도록 하는 원리를 가리켜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일원론은 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낳게 하는 궁극적 원리나 근원적 존재로서 기 하나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일원론에서는 그러한 궁극적 원리나 근원적 존재로 이와 기라는 서로 다른 2가지 실재를 인정하는데, 다만 그 이가 기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이라는 것은 항상 기 속에 있으면서 기의 존재와 운동을 주재하는 원리이거나 법칙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기일원론의 정확한 개념은 이기이원적 일원론(理氣二元的一元論)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성리학자 가운데 이러한 이기일원론을 정립한 대표적인 학자는 명대(明代)의 나흠순(羅欽順)이며, 조선의 성리학자 가운데서는 이이(李珥)를 들 수 있다. 이이의 이기일원론을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과 대비하여 전자는 주기론(主氣論), 후자는 주리론(主理論)이라고 한다.
주기론과 주리론은 이와 기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그 이와 기의 상호관계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점, 이·기에 관한 가치론적 설명에서 기보다 이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동일하다. 그러나 이·기의 분개(分開)와 혼륜(混淪)에 대한 강조의 차이에서 보듯이, 주리론이 '이기결시이물'(理氣決是二物)이라는 분개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기원불상리'(理氣元不相離)라는 혼륜의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기론에서 이는 기와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별개의 실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기의 법칙성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또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서 주리론은 이를 형태는 없으나 운동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해, 주기론은 이의 운동능력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SOY 블로그에 의하면
( http://desert.tistory.com/5124 )
이기론(理氣論)의 발달을 살펴보면
주리론의 특징은 원리적 문제 중시(도덕적 규범을 확립, 실천)
주기론의 특징은 경험적 현실세계 중시(현실 개혁 치중)
주리론의 선구자는 회재 이언적이고
주기론의 선구자는 화담 서경덕이고
주리론을 집대성한 자는 이황(명종)이고
주기론을 집대성한 자는 이이(선조)이고
주리론의 계승자는 김성일과 유성룡이고
주기론의 계승자는 조헌과 김장생이고
주리론의 이론은 이기이원론이고
주기론의 이론은 일원론적 이기이원론이고
주리론의 학파는 영남학파이고
주기론의 학파는 기호학파이고
주리론의 붕당은 동인이고
주기론의 붕당은 서인이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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