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 공주 송산리 고분군
찬란했던 1500년 전 역사의 한 장면이다.
역사가 숨 쉬는 곳엔 유적이 있고
후손들의 노력이 있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하나의 치욕이요, 굴욕이기에
백제 제25대 무령왕릉(武寧王陵 : 461~523)을 기점으로
송산리 고분군(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특이한 점은 하나의 산에 구릉처럼 연결되어져
여러 왕릉을 안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1호분부터 7호분까지 한 바퀴 돌다보면
연인들의 산책길이 되고
공주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을 접할 수가 있다.
그리고 눈 덮인 왕릉위로 태양이 떠오른 빛은
반사되어
역광으로 찍은 사진첩에 저장됨과 동시에
왕릉과 눈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아직도 백제중흥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발걸음이 무겁지 않고 가볍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산책로처럼 한 바퀴 돌다보면 어느 덧
역사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가 어떻게 살아 있든지 간에
누가 어떻게 죽어 가든지 간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역사의 한 장면인가?
떠난다고 모두가 떠나는 것이 아니듯이
온다고 모두가 오는 것이 아니듯이
필요에 의해 모여든 사람들의 발걸음만 있다면
호흡을 하지 않아도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누구를 위한 기록보다는
누구를 위한 보존보다는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듯이
바로 그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거나 달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살아 숨 쉬는 역사가 된다는 사실이다.
주변엔 국립공주박물관,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 연못 등
공주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풍성한 유적지로 공주시를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IMF때인 1998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공주의 유명인사로 박세리와 박찬호가 있어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무령왕릉 맞은편에 서있는 「박세리 기념관」이 있고
야구계의 영웅이자 멈춰야 던지는 투수 박찬호가 다니던
모교 공주중학교가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다.
그건 그렇고 공주호가 호수처럼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4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사업 중 하나인
금강(錦江) 줄기에 세워진
공주보와 백제보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금강을 호위하는 일부구간의 도로가
겨울철 결빙으로 인해 깊게 파헤쳐져 있어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공산성 안내책자에 의하면
“공산성은 백제의 왕성(王城)으로 웅진(공주)을 지키기 위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공산성은 문주왕 원년(475) 한성 위례성으로부터 이곳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겨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사비(부여)로 옮길 때까지 5대 64년간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웅진성(공주)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워 졌다.
공주 공산성은 금강에 접한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여러 개의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성 시기는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시대에 토성으로 축조된 이후 석성으로 고쳐쌓았으며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안내책자에 의하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에 달하고 있다.
무령왕릉은 우리나라 고대의 고분 중 묘지석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피장자의 신분과 정확한 사망연대를 알려준 최초의 왕릉이라는 점에서 고고학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금제관식, 귀걸이를 비롯한 금속 공예품들의 제작 기술을 통해 백제 미술의 발달된 수준을 짐작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령왕릉 출토유물 중 국보급만 살펴보면
무령왕 금제관식 - 국보 제154호
무령왕비 금제관식 - 국보 제155호
무령왕 금귀걸이 - 국보 제156호
무령왕비 금제귀걸이 - 국보 제157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 국보 제158호
무령왕 금제뒤꽂이 - 국보 제159호
무령왕비 은팔찌 - 국보 제160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석수 -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지석 - 국보 제163호
무령왕비 베개 - 국보 제164호
무령왕 발받침 - 국보 제165호
그리고 국보외의 출토유물은
무령왕 베개
고리자루 칼
금동신발 등이 있다.
이렇게 죽어가는 역사를 살려놓는 다는 것은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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