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계룡산 갑사

청아당 2013. 1. 9. 14:47

계룡산 갑사

 

길 있는 곳에 겨울눈으로 가득하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이다.

설화가 침묵으로 보여준다면

눈밭은 고요를 흔드는 바람과도 같다.

천년 사찰의 풍경소리로

댓잎에 부딪히며

반갑게 맞이해주기도 하고

정적의 깊이를 잠재우는 대적전에 갇혀

묵언수행을 하기도 한다.

계룡산 일주문을 지나 계곡물을 따라 걷다보면

석등이 양쪽으로 서있어

바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 밑으론 맑고 차가운 겨울물이

얼음에 덮인 채 흘러가기도 하고

시린 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본다는 것은 느끼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행보와 답사를 뜻하기도 한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거대한 고목의 향기가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나목의 깊이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겨울은 옷을 벗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손에 쥘만한 것이 없어 더욱 좋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발끝에서 멈추며

그 끝이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계곡이기에

나무에 기대어보기도하고

발끝에 닿지 않은 길을 통해

대웅전에 서보기도하고

바다를 떨게 하는 진해당(振海堂)에 앉아

처마 안쪽에 매달려 있는 메주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오가는 곳에

나그네처럼 떠도는 스님들의 발길이 있고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들의 발길이 있어

함께 손을 맞잡고

격 없이

달려오는 바람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좋다.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