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예배 - 2012년 12월 31일 ~ 2013년 1월 1일
간다는 것과 온다는 것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수평선상에 놓인 점처럼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허와 실의 진실성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형태와 비슷하다할 수 있다.
간다는 것은 헛됨과 허망함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시작으로 통하고 있고
온다는 것은 실함과 충만함을 안겨주는 일 같지만
또 다른 끝으로 통하고 있듯이
수천수만의 성도들이 모여든 곳에서
한해를 보내는 송구영신의 깊이는
우주의 심장부를 뚫고도 남을 힘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참으로 깊고도 깊은 신앙심이 아니었다면
참으로 넓고도 넓은 신앙심이 아니었다면
기도라는 제목 하에 모여든
성도들의 발걸음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기도라는 뜻 속에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다리역할을 함과 동시에
사람간의 대화를 이끌고
따뜻한 인간미를 낳게 하는
정(情)이라는 믿음과 기도라는 말이 탄생하는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원시종교(이집트의 태양신, 바빌론의 마르둑신, 팔레스타인의 바알신,
아세라신, 아스타르트신,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이 섬기는 알라신, 유대인의 야훼하느님,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난 토테미즘(totemism), 애니미즘(animism),
샤머니즘(shamaninsm), 주물(物神崇拜), 타부(Taboo), 조상숭배 등을 말한다.)를 거쳐
고등종교(대승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의 원천이 아니었더라면
르네상스의 화려한 문명을 통한
고급문명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 같다.
언뜻 보기에는 신을 위한 종교처럼 보이지만
신을 위한 종교보다는
인간을 위한 종교이기에
그 뜻은 무한하게 퍼져나가고
그 깊이는 하늘과 바다와 땅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었던가?
그래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신이 아닌
애초부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이 만나기 이전에
인간과 인간이 먼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정을 나누고
속뜻을 나누다보니
감동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미지의 세계를 꿰뚫는 천리안이 등장하고
축지법과 순간이동이 일어나고
내면의 스승인 무의식 세계 속에서
진실로
하나님과 만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내면의 세계인 것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길고도 긴 세월 속에서
우리가 위로받아야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고통 속에서 위로를 받고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경제 속에서 위로를 받고
바람도 없는 곳에서 손을 흔드는
숲 속에서 위로를 받고
명상의 끝에서 위로를 받는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이자 인간이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멈춘다고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달린다고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달리는 와중에
하나가 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움직임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렇다.
자신을 알고
남을 알아야 성공하는 법을 알 수 있듯이
한해를 보내는 속에서 감사함을 느낀다면
그보다 더한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한해를
성스럽게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져있다면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도보다 더 강한 것이 정이듯이
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기도야말로 하나로 통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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