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생사의 경계에서
유난히 사건이 많았던 한해였다.
정치가 그렇고
경제가 그렇고
문화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역사가 그렇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생명을 내던질 정도로 힘든 한해였다.
그래도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어
가슴에 쌓인 한을 풀어놓을 수 있어 좋았고
송구영신의 또 다른 경계에서
사선을 넘을 준비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언제든 바람 따라 달릴 수 있어 좋았고
언제든 구름 따라 흘러갈 수 있어 좋았고
언제든 파도와 호흡하며
숲을 향해 달릴 수 있어 좋았다.
차 한 잔에 몸을 맡길 수 있어 좋았고
바쁜 와중에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았고
동네스님이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았고
땅을 흔든 후
우주를 뒤흔들 수 있어 좋았다.
그래 간다는 것은 세월만 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 온다는 것은 세월만 오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하늘을 부를 수 있어 좋듯이
말 한마디에 땅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던 것이다.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뼈와 살을 깎아내는 고통이 있어야 가능하듯이
한해 한해 새롭게 다가올 때마다
긴장을 풀 수 없어 좋았고
긴장 속에서
또 다른 긴장감을 뽑아낼 수 있어 좋았다.
참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위한 삶이 중요한 것인지
죽음을 위한 삶이 중요한 것인지
메아리처럼 되돌아올 뿐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영혼을 지배하며
끝을 알 수 없는 기도로 연결되어져있어
그나마 한숨으로 실어다 나르고 있을 뿐이다.
가끔씩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그림자이기에
그 의문은 더욱 깊은 의혹으로 숨겨지고
문을 두드리거나
잡거나
놓는 순간
우리들이 품었던 의혹들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삶의 찌꺼기가 쌓일수록
우리들의 영혼이 혼탁해지지만
그 와중에도 영혼을 맑게 하는 방법들이
줄지어 나타나
방황하는 영혼들을 이끌어주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죽는다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또는 죽음을 앞둔 노인한테
인생을 논할 수 없듯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소중한
그 느낌 하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와도 맞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둘 수도 있는 것이다.
해마다 한해의 끝에 서서
새로운 문턱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삶은 기다리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
기도의 밑바탕엔
고통과 시련이 의무처럼 따라붙고 있듯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리거나
우리들이 감내해야할 일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살아가야할 가치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코로 냄새 맡으며
귀로 듣는 명언들이 없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음을 향해 몸을 던질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것은
산자에게는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정작 죽은 자에게는
삶보다 더 값진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삶보다 더 값진 죽음이 있을 수 없듯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하여도
삶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 삶이 올바른 삶이 되었든
올바르지 못한 삶이 되었든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작 죽음보다는 그래도 삶이 낫다는
전설이 아닌 신화처럼
기록되어져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고
남이 있어야
내가 있듯이
세발달린 솥처럼 중심을 잡아가며
우주와 통하는 유일한 통로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우리들을 살피고 있는 우주 신이 있기에
마음 놓고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생사 때문에 찾고 있는가?
의식주 때문에 찾고 있는가?
아니면 본래의 고향인 최후의 안식처를 위해 찾고 있는가?
이도 저도 아니면
자신을 품어줄 어머니 같은
하나님이 필요하여 찾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영면에 들 수 있는
능력자를 찾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들 곁엔
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때는 부드럽게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호통을 치면서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소유의 반대가 무소유이다.
무소유의 반대가 소유이다.
우리들은 지금
소유와 무소유의 중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유라 말하고 있는 순간 무소유가 되고
무소유라 말하고 있는 순간
소유가 되어져 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진정 우리들을 위해
소유와 무소유의 경계를
따로 정해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보다 더 명확한 즐거움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바로 이 맛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살아온 나날이었던 것이다.
살기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죽기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는 우리들의 능력이기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해를 보낸다는 것은
묶은 때를 벗어버리고 홀로 서는 일이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할
또 다른 삶의 거울로 서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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