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앞만 보며 달려온 바람

청아당 2010. 7. 18. 21:15

앞만 보며 달려온 바람

 

누가 부른다.

땅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부른다.

이제 앞만 보며 달리지말라고 한다.

뒤돌아보며

여유를 갖고 달리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달려왔는지

무엇 때문에 기억하였는지

뒤돌아보면

늘 빈손인 줄 알면서도

달리지 않으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발길 닿는 대로 달려왔다.

잠시라도 손에서 놓고 나면

그만큼 가슴이 가벼워진다.

특히 산에서 놓는 가벼움은

침묵보다 더 가볍다.

침묵속의 또 다른 침묵인

정적인 침묵보다

동적인 침묵보다

더 가벼운 것이 산에서 놓는 빈손이다.

굳이 놓지 말라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놓아지는 빈손이지만

들고 온 모든 것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허허롭고 공허롭다.

이대로 우주의 끝에서

티끌 하나 없이 활활 태우고 싶지만

현실은 티끌로 시작해서

티끌로 끝나기에

우주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아직도 앞만 보며 달리는 바람이 있다.

이미 뛰어든 원이기에

제자리에서 빙빙 돌든

밖에서 빙빙 돌든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새로운 길이 생겨난다.

똑같이 걷고 싶지 않아도

바람이 등을 떠밀고 있어

마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우주가 멈추는 날

모든 생명이 멈추는 날이다.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은

우주가 멈추는 날이다.

뛰어들 원이 없다는 것

생명도 무생물도 모두 멈춰있다는 뜻과 같기에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가 없고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큰 기쁨인가?

 

2010718일 일요일

 

앞만 보며 달려온 바람을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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