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강(春岡) 엄용식(嚴墉植) 화백님의 팔순생신
함께 달려온 세월 앞에서
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묻지 않아도 귀가 먼저 듣고
보지 않아도 눈이 먼저 보고
만지지 않아도 손이 먼저 느껴지는
80년을 살다보면
세월을 앞지르는 혜안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숱한 생들의 걸음들이 모여
하루
이틀
사흘을 보내고 나면
천년이 흘러갑니다.
얼마나 달려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달려온 삶이 있었기에
홀로 설 수 있는 것처럼
억겁의 세월보다 더한 생명력으로 달려왔습니다.
뒤돌아보면
1931년생이 겪어야했던 격동기인
나라 잃은 슬픔과 목숨을 건 6·25 전쟁
그리고 숱한 사건들로부터 살아남아
죽음조차 두려워하던 삶들이
옥죄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없는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살아온 질긴 생명력이기에
하늘도
땅도
그리고 억겁의 세월조차도
손을 들며
팔십 평생을 함께 달려온 나날들이었습니다.
길목마다
발목을 잡고
앞으로 달리는 것을 방해해온 세월이 있었지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슴에 담을 수 없는 파도처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음미할 시간도 없이 달려온 삶이기에
어느 순간
여백으로 풀어놓은 화선지를 펼친 후
붓을 잡고
예술의 혼에 혼신의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어떤 때는 달빛과 소나무를 그려 넣기도 하고
어떤 때는 미인도와 신선도를 그려 넣기도 하고
시서화(詩書畵)를 넘나들며
한 호흡으로 달려왔습니다.
어렵고 힘든 치열한 삶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화선지에 옮겨다 놓은 여백 때문이었습니다.
방안을 가득채운 묵향(墨香)과
먹을 가는 손맛이 좋아
40년 외길 속에서도
단 하루도
붓을 놓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더는 잡을 수 없는 붓이지만
지금껏 한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예술은 그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은 마음에 담겨진 자연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모든 길은 한곳으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그 끝을 알아야 시작도 알 수 있듯이
얼마나 더 깊이
얼마나 더 멀리
얼마나 더 높이 뛰어올라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이 한 몸처럼 움직일 때
손끝으로
우주를 담아 여백에 뿌릴 수가 있습니다.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고
영혼을 즐겁게 하는 여백의 미는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바람이 불때마다
달려오는 여백이 좋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화선지에 붓을 갖다 댑니다.
지금은 손으로 그리는 것보다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 더욱 좋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바람소리가 있어 좋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좋듯이
청량산에 올라
해송(海松)사이로 떠오른 세상사는 일들이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예술의 세계는
바람이요
구름이요
물입니다.
이름 없는 풀이 있어 좋고
이름 없는 하늘이 있어 좋고
이름 없는 구름이 있어 좋고
이름 없는 물이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예술보다는
말하지 않고 통하는 침묵하는 예술이 있어 더욱 좋습니다.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춘강 엄용식 화백님의 팔순생신(음력 1931년 2월 10일, 양력 2010년 3월 25일 목요일)을 기리며…
청아당 엄상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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