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이 없으면 반응도 없다
자극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자극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마치 감시자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자극은 어떠한 형태로든 받게 되어 있다.
산에 오르자 체온이 좋아하는 바람이 온몸에 감긴다. 시야도 맑고 탁 트인다. 비가 온 뒤에 시정거리 또한 좋아졌다. 나무도 바람도 숲도 그리고 바위조차 정자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저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신이 맑고 깨끗해진다. 아니 온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다. 잠시 호흡을 고르자 더욱 맑고 투명한 정신이 노크한다. 두 손 바닥을 맞댄 채 정신을 모으자 강렬한 기운이 모여든다.
자극은 자극을 받고 있는 줄을 몰라야한다. 그래야 반응이 나타난다. 반응을 위한 자극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자극을 받기위한 자극을 해서도 안 된다. 저절로 다가와 안부를 묻는 것처럼 자극도 반응도 그렇게 느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듯이 그렇게 자극과 반응은 양방향으로 흘러야한다.
산에 오르는 것도 영화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어떠한 자극을 받기위해 생겨난 행동들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수지와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위해 밤낮으로 몰두하는 연습을 한다. 사람들은 기업인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기업인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업인들도 있지만 나쁜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업인들도 있다. 그 와중에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반응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詩가 詩가 되기 위해서는 인생을 먼저 알아야한다. 아니 인생을 알지 못하면 詩다운 詩가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영감을 통해 작품을 쓴다. 인생을 위해 작품을 쓰지 않는다. 작품을 쓰다보면 그것이 인생이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주변에서 자극을 받거나 홀로 명상에 들며 살아간다.
의념은 그냥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표를 가져야만 생겨나는 것이 의념이다. 목표한다고 의념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야만 생겨나는 것이 의념이기 때문이다.
호흡은 누구나 하고 있다. 호흡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야할 이유도 없지만 생명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기에 호흡이 끊기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호흡에 열중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인체전자석 현상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먼저 원리를 깨우쳐야하고 호흡법에 진솔하게 접근해 들어가지 않으면 호흡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극이 필요하다. 자극이 없으면 반응도 없기에 일상에서 자극을 받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제각기 다른 자극이 주어지지만 자극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의념은 생각을 일으키는 힘이다. 한마디로 동력을 얻기 위한 시동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주어진 장소에 따라 의념의 힘이 달라질 수는 있다. 이는 산과 광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어느 정도 기준이 정해져 있어 자신의 현재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끝없이 이어진 광야에서는 나침반 없이 맴도는 낙엽과도 같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극은 그만큼 중요하고 자극을 통해 새로운 반응들을 경험할 수 있기에 건전한 자극일수록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만약에 자극이 없다면 무료해서 나약해지거나 할일이 없어져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방황하게 된다. 눈만 뜨면 움직이는 것은 하나의 자극제이다.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하나의 자극제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반응을 나타내 무료했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극은 일상에서 접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겨난다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기에 자극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극은 자극으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반응 또한 반응으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저절로 안부를 묻듯이 스스로 다가오게 만들어야한다. 그래야만 안심하고 자극과 반응이 순응하게 된다.
2019년 9월 11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