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선악』/12.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공존하는 선악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청아당 2019. 9. 7. 17:25

공존하는 선악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선악을 구분하기 전에

수평부터 맞추어 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공존하는 선악이다.

 

처음부터

선과 악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한쪽이 기울면 한쪽이 올라가기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과 악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애매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이중성에 대해

그 누가 답을 줄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기에

다중적 멀티플레이만이

유일한 해답으로 존재하고 있다.

 

공존하는 선악은

수평을 맞추기 위해 존재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반사처럼 일어나는

공존하는 선악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를 때는

팔짱을 낀 채 관망하다보면 해결이 된다.

 

선과 악은 구분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늘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는 일을

따로 구분해서 무엇 하겠는가?

 

 

공존하는 선악은 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공존하는 선악은 바람처럼 불고 있다.

 

우주가 회전력에 의해 지탱하고 있다면

바람은 움직임에 의해 지탱하고 있듯이 말이다.

 

2018419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