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詩』/『오늘 올린 詩』

인과응보3 - 복원력

청아당 2017. 4. 6. 12:17

인과응보3 - 복원력

 

한 세상을 휘둘러 본 삶이기에

그 골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천하를 호령했던 기개이기에

그 아픔은 더욱 컸을 것이다.

 

한번 추락하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상처 또한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단하게 잠긴 철문조차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체 한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함정에 빠지거나 엮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우리들이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다.

아니 우리들이

선택해야할 길은 그리 많지 않다.

 

공존하는 선악처럼

선과 악이 함께 싸우며

복원력이 작동되어지는 과정에서

그 아픔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으로 기울면

바로잡으려는 복원력처럼

선과 악이 함께 다투거나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다 이러한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차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에

중용의 처럼

중심을 잡아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정의에 맞든 맞지 않던

상관없이

신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끝이 어디까지 연결되어져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겠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면

그것처럼 불안한 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선과 악의 이름으로 살아온

공존하는 선악은

선이 되었다가

악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었다가

선이 되기도 하며

공존하는 선악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신시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공존하는 선악은

참으로 비정하면서도 냉혹하다.

 

어떠한 방식이든

죗값은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승에서 받는 것이

저승에서

지옥의 형벌로 받는 것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이 지은 죄는

이승에서 훌훌 털고 가야하기에

참담하거나 비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삶의 방식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창피하다고 숨을 수 없듯이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죗값은 털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지은 죄

그 누가 대신해 주겠는가?

 

중요한 것은

죗값을 치룰 수 있는 것도

행복이자 기회라는 점이다.

 

이승에서

모든 죗값을 다 받고

떠날 수만 있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과응보가 배려해주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슨 미련이 남아 있겠는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야하기에

모든 것을

비우고 또 비워야만 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운명처럼 받아들이거나

천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201746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