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5 - 하나님도 죄인이다
사람만 죄를 짓는 줄 알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인간보다 더 많은 죄를 짓는 분이
하나님이다.
왜 자기형상처럼 만들어놓고
에덴동산을 들먹이며
고난과 시련을 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누구도
완벽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듯이
완벽함은 하나님조차
비켜가고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진공상태인
태초 이전의 세계로 되돌려놓던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던지
아니면
이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준다면
인간이 신에게
반항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자꾸만 자신만 믿어달라고 한다면
그 누가 신을 믿겠는가?
인간이고
신이고
암묵적인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한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할 수 없는 기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처럼 인자하신 분이
어머니처럼 따뜻한 분이
왜,
인간을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존재 그 자체를 만들지나 말지!
이 우주를 다 품고도 남는 분이
무엇 때문에
우주를 만들고
지구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우리가 언제 당신의 형상을 닮고 싶다고 했나요?
우리가 언제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했나요?
아니면
자나 깨나
하나님을 찾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손을 내밀며
보고 싶을 때 볼 수도 없고
손을 모으며
기도를 해도 볼 수가 없고
도대체
어느 순간에나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기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이기에
채워도 또다시 채워야만 하는가?
비우고 또 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운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숙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처음부터
우리들은
죄인이요,
영웅이라 할지라도
또는
천하를 모두 갖게 하거나
이 우주를 다 준다 해도
우리들의 마음만큼은 빼앗을 수가 없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간이 신이 필요한 것처럼
신도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수많은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수많은 인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인간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신이 선택되어지듯이
신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인간이
선택되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
어쩌면
인간과 신과의 관계는
밀월관계인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이 신을 보지 못하듯이
신도 인간의 무한한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간과 신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이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공통분모로
수평으로 이동하거나
수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이 얼마나 공평한 일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고…
언제까지고
영원히 순환시키려는
의지가 확고한 이상
쉽게 꺾이지 않겠다는 생각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운명이고
바로 이것이 숙명이고
바로 이것이 천명인 것이다.
2017년 4월 15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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