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힘』/10. 신의 간섭이 없는 나만의 공간

신의 간섭이 없는 나만의 공간

청아당 2019. 12. 27. 10:25

신의 간섭이 없는 나만의 공간

 

너와 내가 만나지만

함께 간다고 다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마다 다 개성이라는 것이 있듯이

그 어떤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쥐어짜고 억눌러도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있다면

바로 참자아일 것입니다.

 

이것은 신조차도 어찌해볼 수 없는

우주공간에 별도로 존재하는 진공상태와 같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요의 극점으로 이어지고

신의 간섭이 없는 나만의 공간이자

우주에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신의 허락 하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그런 곳이 고요의 극점이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 우주적인 폭발력을 경험하며

가장 안쪽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에게는 하나가 부족합니다.

 

이론적인 깨달음은 많은 수행자들이 아는 것입니다.

 

실전에서 깨닫는 깨달음하고

이론에서 깨닫는 깨달음하고는

천지차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론적인 깨달음은 학문적인 깨달음이기에

논리적으로 완벽해보이기는 하지만

허를 찌르면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허점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깨달은 이에게도 있고

신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신도 인간으로부터

멸시를 당하거나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이야 말로해서 무엇하겠습니까?

 

하지만

수행이라는 큰 틀에서 커다란 벽을 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수행자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비법 아닌 비법으로 수행자들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요즘에는 공개적인 수련법으로

수행자들을 조금이나마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행에는 희생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자기희생도 필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희생도 필요합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듯이

희생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은 더 많습니다.

 

공개도 어떻게 보면 자기희생에 포함되지만

반드시 속속들이 모든 것을 공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그려나가는 것이기에

조금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나타날 수는 있어도

그것은 인간의 본 모습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수행을 하기 위해

젊었을 때 아끼던 수백만 원 어치의 책을 판 적이 있습니다.

 

구차원단원에 급히 가야하기에 마련하기 위한 최선책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회비가 5만원이었습니다.

 

헌책방에 내다 팔았더니 딱 5만원이 쥐어졌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문을 두드린 곳이 바로 구차원단원이었습니다.

 

그러니 수행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했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는 수행도 수행이지만

아끼던 책을 팔고나니 마치 순결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행에 있어 남다른 열정을 보였고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까지 섰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호흡량을 공개하지 않아

그 호흡량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처음 1분대만 해도 힘이든 것은 사실이지만

쉽게 극복해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주어진 호흡량은 6분대 미만이었지만

공개가 안 되었기 때문에 몇 분인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주어진 호흡량을 얻기 위해

하루 4~6시간 동안 수련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다음 달이 문제였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돈이다 보니

그 다음에는 회비를 낼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달이 되기 전에 3~5분대를 돌파했던 것 같습니다.

 

오래되어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3~5분대를 돌파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승승장구하듯이

호흡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군요.

 

호흡을 할 때마다 호흡량이 늘어나면서

심안이 형성되고 투시(인체투시 및 전생, 천국과 지옥 등)가 일어나고

우주적인 현상들이 줄줄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그 다음부터 회비를 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아마도 이시명 단사님께서 깊은 배려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자 고마운 일입니까?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토요일마다 공개강연을 해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홍태수 교수님이었습니다.

 

그때는 구차원단원은 이시명 단사님께서 직접 운영하시고

홍태수 교수님은 공개강연을 해주시기 위해 방문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눈에 띄게 된 것이 저였습니다.

 

그래서 인연을 맺게 되어

2개월 동안 함께 숙식하면서

홍태수 교수님과 이시명 단사님의 깊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반대급부 적으로

처음으로 가는 길이자 개척하는 길이다보니

수련을 하면서 그 높은 호흡량을 극복하기 위해

수없이 목숨을 걸어야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인체전자석의 원리와 단광기기였습니다.

 

물론 이시명 단사님께서는 걱정이 되어

호흡량을 내어주실 때마다 주의 깊게 물어보시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호흡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부족한 하나가 채워질 때마다

놀라움과 감격에 의해 더욱 매달렸기에

그 어려운 벽을 깨고 나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감추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은 것은

바로 이 차이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장인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아

얼마나 좋은 기술들이 사장되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공개되어져 있어

그러한 추세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공개를 원칙으로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손해도 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배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정도로

도반님들에게 더없는 영광을 입기도 합니다.

 

 

지금은 도반님들의 헌신적인 조언으로 인해

수많은 빅데이터가 축적이 되어

전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으로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훌륭한 분들은

바로 도반님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9210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