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음양오행론 - 음양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양은 밝음과 강함을 뜻하고 음은 어둠과 부드러움을 뜻한다.
음양은 천지, 일월, 상하, 고저, 동서, 남북, 동정, 명암, 표리, 남녀, 강유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렇게 양분성(이원론) 속에서 양이 음이 되어지고 음이 양이 되어지면서 그 시원은 음양(陰陽)의 두 원기(元氣)가 나누어지기 전의 근본을 지칭하는 일원론 즉 +, - 이전의 세계 태극이지만 끊임 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성소멸 변화해 나가는 것이 음양의 이치이기도 하다. 또한 일원적 이원론(一元的 二元論)을 바탕으로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양의 변화는 우주를 비롯하여 인체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그리고 최상의 조건을 유지하는 것은 균형과 조화를 통해서 중용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음양이 중용의 자리를 지키게 되면 쾌적하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인간의 칠정(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에 얽매이지 않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음양의 조화도 다 따지고 보면 음양의 중용자리를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음양의 적절한 조절은 필요하며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의학과 명리학 그리고 선도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범위는 폭넓게 구현되어져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음양의 중용자리만 지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삶 자체가 워낙 변수가 많은데다 너무 획일화된 정형적인 삶을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음양의 조화는 수시로 깨뜨려지고 또다시 합일의 과정을 거쳐 순환의 법칙에 얽매이게 된다.
이것은 음양의 조화가 오래도록 버텨내려는 인내심이 부족한 면도 한 원인이 되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음양의 조화보다 더 많은 변화를 좋아하다보니 방랑벽을 지닌 나그네처럼 우주를 떠돌게 되는지도 모른다.
잡으려고 하면 더욱 멀리 달아나는 마음처럼 음양이나 기나 다 똑같은 성질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너무 음양의 조화에 의존하려고하기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멈추고 나아가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음지는 항상 음지가 아니며 양지는 항상 양지가 아니다.
음지에 산다고 해서 당장에 그 사람이 죽거나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양지에 산다고 해서 항상 기쁘고 행복하고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볼 수도 없다.
사람이 살다보면 평생 동안 좋은 일만 좋은 행복만을 위해서 살 수 없으며 육십갑자가 순환(회갑)하듯이 좋은 일, 나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어있다.
이는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피해갈 수 없으며 누구나 한 번씩은 다 겪는 일이기도 하다.
큰 경험을 얻기 위해서는 큰 고통이 따르듯이 오히려 고난과 고통을 즐겨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한다.
음양의 이치는 영원히 한곳을 고집하지 않는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래도 맞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가운데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고난과 고통도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가운데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고 이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순환의 법칙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수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묘약과도 같다.
또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어린아이나 노약자 등을 보더라도 부족하다고 목숨을 버려야한다거나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제논리를 비추어보더라도 세계경제의 사이클(순환주기가 갈수록 짧아짐)은 일정한 폭의 지표를 보여주지는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공황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음양의 조화는 조금만 빈틈이 있거나 변화의 기색만 보인다면 친절하게 다가가 안부를 묻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이라는 명목아래 개발을 하다보면 전에는 형편없는 지역이었을지라도 개발 후에는 전혀 다른 생동감과 역동성을 느끼게 된다. 이는 낙후된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묘한 힘이 있다기보다는 지각변동(맨틀 내에서 일어나는 대류현상)에 의해 판구조론이 형성되듯이 음양의 조화가 언제고 한자리만을 고집하며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자연의 법칙을 일깨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강대국의 흥망성쇠나 정치인들의 권력이 영원히 존속할 수 없듯이 시시때때로 음양의 조화여부에 따라 변화의 틀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변화는 태곳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앞을 향해 달려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또 음양의 씨앗이 바닥이 날 때까지 앞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흔히 노른자위 땅일지라도 상권이 형성되려면 인구 밀집 지역이어야 하고 지역적인 특색을 잘 살려 가장 알맞은 콘텐츠를 통해 부각시켜야만 부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기도 한다.
언덕위의 아름다운 집을 소유하고 있는 상류층일지라도 시간이 되면 중류층에 넘겨주고 또 다른 곳을 향해 이동하듯이 순환의 반복은 상류층에서 중류층으로 중류층에서 하류층으로 단계를 밟으며 이동되어져가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영원히 하류층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류층에서 중류층으로 중류층에서 상류층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은 음양의 조화가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해놓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음과 양이 모이면 탄생이 이루어지고 음과 양이 흩어지면 소멸에 이른다.
컴퓨터의 세계는 0과 1이라는 2진수로 표현되는 기막힌 세계이다.
0과 1의 조합만으로 그 모든 숫자를 비롯하여 멀티미디어까지 그 표현의 영역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하다.
실제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다보면 그 범위가 광대하여 평생 동안 공부해도 못다할 정도이다. 물론 기본적인 흐름은 파악이 되겠지만 세부적으로 전문분야에 들어가다 보면 의외로 공부해야할 것도 많고 연구해야할 것도 많은 것이 컴퓨터세계이기도 하다.
0은 전원이 꺼진 상태로 Off을 뜻하고 1은 전원이 켜진 상태인 On을 뜻한다. 그리고 0은 음이고 1은 양이다.
2진수로 8421코드를 합해보면 8+4+2+1=15가 된다. 15이상의 숫자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8421코드의 4자리를 5자리, 6자리, 7자리, 8자리 등 순으로 진행시켜나가면 무한에 가까운 숫자를 표현해낼 수도 있다.
또한 BCD(6비트, 64문자 표현, 이진화 십진 표기법), ASCII(7비트, 128문자 표현, 아스키), EBCDIC(8비트, 256문자 표현, 엡시딕) 등을 통해 컴퓨터와 친구가 되어 안방에서 전 세계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터넷을 비롯하여 다양한 컴퓨터의 세계를 접할 수가 있다.
10진수 10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2진수로 1010(2)으로 표현되듯이 단순히 0과 1의 조합만으로 컴퓨터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합인 컴퓨터세계마저 음양의 이치아래 무궁무진한 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음양의 이치가 구석구석 파고들지 않은 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음양의 세계는 다양하며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추구하며 또한 자신의 힘으로 부족하다고 판단이 들면 과학자의 힘을 빌려서라도 변화를 추구하며 발길이 닿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우주를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또한 음양은 기와 한 몸이 되어 빛과 열을 얻어야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비로소 마음 놓고 변화의 틀에 기대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데로 우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다양하게 행로를 정해놓고 움직이기도 한다.
역에서는 음양 이전의 세계를 태극(太極. 음양의 이기(二氣)가 태극의 일원(一元)에서 생성했다고 하는 사상)이라 부르고 장자(莊子)에서는 기의 본체를 태허(太虛.《장자》의〈지북유편(知北遊篇)〉에 있는 말로 우주의 본체 또는 기의 본체)라고 부른다.
이 둘은 같은 의미로 통한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걷어내는 음양의 조화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더 나아가 궁극의 세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음양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위의 내용으로 살펴보아 음양의 조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현실과 살을 부비며 밀접하게 연관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9년 7월 13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