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알고 싶으면 깊은 사유가 필요합니다 – 묵산님
묵산님
“깨달음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자연에게 물어보라는 말씀 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그 말씀을 철저히 지켰던 것 같습니다.
지나가다 담벼락에
담쟁이 넝쿨이 내려와 있으면
간난아이 고사리 손을 잡듯
살며시 잡아 보기도 했고
새들이 앉아있으면 그곳으로 가서 말을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산정에 올라 이름 모를 꽃이 피어있으면
"너 참 예쁘구나"하고 칭찬도 해 보았습니다.
우주를 알고 싶으면 깊은 사유가 필요합니다.
호흡만이 전부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성자들이 단전호흡을 해보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말씀과 자연과
그리고 과학이 항상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의 줄기로 매듭 짓는데 현재도 정진하고 있습니다.
생명에너지의 바다도
예전에 거진에서 한 달 정도 수련을 할 때
거진 앞바다에서 바다와 대화를 하다 알아낸 방법 입니다.
수련을 마치고 잠시 쉬기 위해 바다를 찾아
한참을 바라보고 내부에 바다의 에너지를 담으려 노력하다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몸속에서 바다가 출렁거립니다.
그래서 알게 된 방법입니다.
성자들의 말씀도 결국 생명에너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만 노골적으로 호흡으로 축적시키라는 말씀은 아니고
마음을 우주만큼 크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되리라는 암묵적인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신단과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부지런한 탐구가 필요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주는 신의 의식이고
우리는 그 의식 안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교회도 절도 필요 없습니다.
자연이 바로 대신전(大神殿) 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곳이 평범이자 신비의 세계입니다.
어디 도망가지 않습니다.
파랑새가 자기 집 뒷마당에 기르고 있던
새라는 것을 깨닫듯이 그렇게 알게 될 뿐입니다.
과학과 종교 그리고 생명에너지가 하나가 된 세상이
궁극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가야금이라는 매체가 필요 했듯
우리들도 공부와 탐구라는 매체가 필요합니다.
깨달음 하나만으로는
알고 있는 것도 모른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안 되면 생각으로 끌어드리면 됩니다.”
호흡도 중요하지만
우주를 알고 싶으면 깊은 사유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호흡 내내
사유의 세계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호흡이라는 틀에 갇히기보다는
자연과 우주라는 허공에
마음을 방목해놓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흔들면
흔들려주는 것이 자연에 대한 예의이듯이
고정된 마음을 잠시 풀어주는 것도
호흡에 대한 예의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각종 다양한 매개체들이 등장하는 것도
우주심(宇宙心)에 한발 더 진입하기 위한 방법이지
그 자체가 우주적인 마음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다보니까
저절로 정점에 도달해있듯이
정진하다보면 그렇게 정상에 서 있게 됩니다.
2018년 9월 24일 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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