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을 회상하며
계양산(395m) 아래에는 경인여대가 있다.
그 건너편으론 경인교대가 있다.
인천교대가 경인교대로 명칭이 바뀌었다.
경인여대 옆으로 휴양림과 휴식처가 있어
틈나는 데로 찾아가
나무에서 솟아나오는 피톤치드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솔향기 나는 바람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나뭇가지위에 앉아 바람에 맞춰 흔들거리기도 한다.
피톤치드는
자연치유력과 면역기능을 강화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계양산(桂陽山)은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고도 불린다.
계양산 등산로 입구에서 올라가다보면
숲길종합안내도가 나온다.
꽃과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중구봉(275m)이 시야에 비쳐지고
팔각정 쉼터인 계성정(桂城亭)이 나타난다.
계양산성이 있고
경인여대가 보이고
송신탑이 계양산을 중심으로 서있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으로
서있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중용의 위치가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계산삼거리는 추억이 많은 곳이다.
○○정보처리컴퓨터학원에서 근무했기에 그렇고
나○하법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했기에 그렇다.
학원에서 강의할 때는
실내에 갇혀있기에
하루 종일 햇빛 볼 날이 많지 않지만
법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는
내근도 하지만 외근도 많이 하기에
문서작성부터 시작하여
발로 뛰어다니며
법원과 등기소, 시청, 구청, 군청, 읍·면사무소 등을
돌아다니며
소유권이전에 관한 서류나 전세권 설정, 신축,
법인설립에 관한 서류, 민사 등에 관한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외부로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계산동 일대와 서구 그리고 검단 및 경기도 일대까지
그 영역은 언제든지 확대되어나갈 수가 있다.
계양산은
사방으로 살펴볼 수 있는 탁월한 시야를 가졌다.
서구는 생각보다 넓다.
서구청 뒤로는
2014년 아시안게임 때 지어진
아시아드주경기장이 화려한 모습으로 서있고
송림동에서 강화도를 향해 달리는 화물차들로 인해
바쁘게 움직인다.
가좌오거리는 재개발 때문에
바삐 움직이고 있고
석남동, 거북이시장, 기아자동차, 영창악기 등이
아직도 버젓이 서있다.
가야할 길이 바쁜 동네이다.
청라경제자유구역이자 청라국제도시가
자리하고 있고
청라중앙호수공원가 있고
청라도가 있고
일도가 있다.
공촌천이 흐르는
공천천교와 국제교를 지나
베어즈베스트청라GC를 지나
인천국제CC를 지나
공항 가는 길 청라국제도시역을 지나
하나금융그룹통합데이터센터가 있다.
북청라IC에서
북청라대교를 건너면
드림파크CC가 있고
드림파크승마장이 있고
드림파크야생화단지가 있다.
경서근린공원을 지나
백석대교를 건너면
백석교차로가 나오고
왕길고가교가 나오고
안동포사거리가 나오고
왕길지하차도가 나오고
봉수대로를 타고
강화도로 달리면 된다.
강화도로 가는 길은 또 하나 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서김포·통진 IC 및 TG(요금소)로 빠져나가
문수산성을 거쳐 강화대교로 진입하면 된다.
맑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道라고는 하지만
道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道人이다.
반드시 맑고 고요한 것만을 좋아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듯이
산속이든
속세든
이러한 법칙은 그 어느 곳에서도 적용되기에
아무리 청정지역이라 할지라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道는 탁하고 지저분한 곳에서도 자라고
道는 어지럽고 현묘한 곳에서도 자라고
道는 맑고 고요한 곳에서도 자라고
道는 싫음과 좋음에서도 자라고
道는 성공과 실패 속에서도 자라고
道는 기쁨과 실망 속에서도 자라고
道는 죄와 벌 속에서도 자라고
道는 빛과 어둠속에서도 자라고
道는 공존하는 선악 속에서도 자라고
道는 그 어느 곳에서도 자라는 것이 道이다.
계양산 아래
계산삼거리를 중심으로
○○정보처리컴퓨터학원이 있고
나○하법무사 사무실이 있고
우측으로 언덕을 넘어가면
징매이고개생태터널과 경인아라뱃길 및
서구청과 강화도로 가는 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가면
임학사거리를 지나
병방동으로 가는 길과
계양 I/C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및
아파트 숲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인천1호선 지하철 구간을 살펴보면
송도국제도시 내
국제업무지구역에서 출발하여
센트럴파크역, 인천대입구역, 지식정보단지역, 테크노파크역,
캠퍼스타운역, 동막역, 동춘역, 원인재역(1호선과 수인선 순환역),
신연수역, 선학역, 문학경기장역, 인천터미널역, (인천문화)예술회관역,
인천시청역(1, 2호선 순환역), 간석오거리역, 부평삼거리역, 동수역,
부평역(1호선과 경인선 순환역), 부평시장역, 부평구청역, 갈산역,
부평 I/C를 지나 작전역, 경인교대역,
계산역, 임학역, 박촌역, 굴현역을 비롯하여
계양역은 인천1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는 자리이다.
인천부평초등학교 내에는
부평도호부가 자리해있다.
지산 그라띠아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고
계산삼거리 건너편엔
신도 브래뉴 아파트가 재건축되어져 있다.
계양산 아래엔
계양문화회관이 있으며
계양구시설관리공단이 들어서 있고
연무정이 있으며
계양예비군 훈련장이 있다.
관교동에 인천향교가 있듯이
경인교대 인근 계산1동 행정복지센터 옆에
부평향교와 부평향교 유림회관이 있다.
계산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계양도서관이 있으며
계산국민체육센터가 있으며
계산공원 운동장이 있다.
그리고
임학공원이 있으며
임학사거리엔
임학지하차도가 있으며
오조산 공원이 있고
학마을서해아파트, 학마을영남아파트,
학마을서원아파트, 학마을한진아파트 등이 있다.
오조산 공원 중심으로 살펴보면
홈플러스가 있고
인천계양코아루센트럴파크아파트가 있고
용종마을중앙아파트가 있고
용종마을신대진아파트가 있고
초정마을두산아파트가 있고
초정마을쌍용아파트가 있고
초정마을동아아파트가 있고
초정마을하나아파트가 있고
은행강북아파트가 있고
은행삼보아파트가 있고
은행아주아파트가 있고
은행태평아파트가 있고
은행마을태산아파트가 있고
도두리동보아파트가 있고
도두리대동아파트가 있고
도두리동남롯데아파트가 있다.
굴포천을 따라 가다보면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인 노오지 J/C를 지나
경인아라뱃길 두리생태공원이 나오고
경인아라뱃길 다남공원이 나오고
사천공원이 나오고
경인아라뱃길 검암공원이 나오고
국립환경과학원이 나오고
한국환경공단 본사가 나오고
경인아라뱃길의 꽃 아라빛섬이 나온다.
다시 정리해보면
아라한강갑문(경인항-김포)인 전호대교에서 김포아라대교로
김포아라대교에서 굴현대교로
굴현대교에서 게양대교로
게양대교에서 백석대교로
백석대교에서 북청라대교로
북청라대교에서 아라서해갑문(경인항-인천) 인증센터가 나오고
그 유명한 낙조의 여왕 정서진이 나타난다.
아라김포여객터미널에서 아라인천여객터미널까지
경인아라뱃길은
오늘도 숨죽이며 오가고 있다.
계양산은
부평구에서도 잘 보이고
계양구에서도 잘 보이고
서구에서도 잘 보이고
부천에서도 잘 보이고
김포에서도 잘 보인다.
계양산은
마치 한 폭의 화산처럼 솟아올랐으며
산의 높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포평야가 있는
평지위에 올려져있다 보니
그 어느 곳에서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곳이 계양산이다.
이 얼마나 유리한 조건에 놓여 있는가?
사방에서 지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명명백백한 사항이자
어느 곳에서도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계양산을 중심으로 뻗어있는
고속도로며
경인아라뱃길이며
인천국제공항과 강화도
그리고 김포와 한강을 비롯하여
손과 눈이 닿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뻗어있는 곳이다.
계양산은
부평역과 정면으로 뻗어있으며
부평역을 지나 달리다보면
부평구청을 지나가게 되어있고
쉐보레자동차공장을 지나가게 되어있고
갈산동을 지나가게 되어있고
부평 I/C 경인고속도로를 건너
작전동을 지나가게 되어있고
경인교대를 지나가게 되어있고
계산삼거리에 도달하게 된다.
계산삼거리 위로 우뚝 서있는 것이 계양산이다.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자료출처 :
[출처] 부평향교에서 추기 석전대제 봉행하다 | 작성자gyeyang_gu
석전대제 봉행식은
1년에 2회로 춘기, 추기로 거행된다고 합니다.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85호로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큰 제사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이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중요무형문화제 제 85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네요.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안자, 중자, 자사, 맹자 등 4대 성인과 송조 2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셔 왔다고 합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성전 앞 양쪽으로 위치한 동,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을 동서로 봉안하였고
1949년 전국 유림대회의 결정으로 당시 성균관과 각 향교의 동. 서무에 봉안되어 있던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는
대성전에 종향하고 현재 동. 서무는 건물 형태만 있으며 내부는 비어 있다고 합니다.
석전대제는 위패 앞에 잔을 올리는 제관인 헌관, 집례(진행을 담당하는 제관), 대축(제사의 축문을 읽는 제관)과 집사가 참여하며 더불어 문묘제례악 연주와 일무를 추는 등 꽤 규모가 있는 봉행식이라고 합니다.
석전대제의 절차는 영신례, 전폐례, 초현례, 공악,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송신례, 망료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고 연주되는 음악을 ‘문묘제례’라고 합니다. 춤인 일무가 함께 합니다.
석전대제 봉행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는 다들 경건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로써 석전대제의 봉행식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부평향교는 인천향교보다 271년이나 앞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매년 두 차례 춘기·추기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어
우리 계양구가 교육의 중심도시임이 증명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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