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해석해보는 경락이론
인체 내면을 여행하다보면 참으로 놀랄만한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인체는 우주를 그대로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면의 우주여행을 통해서 축소된 우주를 대하게되는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우주에 대한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체 내면에서 우주탄생을 비롯하여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하나같이 전개되어져 나타나고 그 신비로운 현상 또한 괄목할만한 사실들이기 때문에 예부터 인체를 소우주라고 말한 선현들의 지혜가 탁월하게 돋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히 내면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는 체험할 수 없으며 보다 체계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경락유통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단순히 전설로만 전해져오는 것으로 끝내야할지도 모른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겠지만 보다 체계적인 접근방법이 주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그러한 세계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예부터 꾸준하게 시행되어져 왔으며 보다 현실감 있고 생동감 있는 접근방법을 많은 선각자들은 앞 다퉈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선각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방법에 혼란을 느끼고 있으며 체계적인 접근방법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옛것이 좋기는 하지만 시대적인 배경을 통해서 이해해야할 부분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서 새롭게 해석해보는 이론서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부응하여 여력은 부족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원리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들어간다면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전호흡을 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선도수련법의 결과만을 바라는 답습적인 차원은 아닐 것이다.
우선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고 또 평생을 선도수련법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생활과 수련이라는 이중적인 생활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하면 현실 속에서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높은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안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현실을 떠나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 그 중심은 당연히 현실에 두어야할 것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이상세계를 동경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가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로지 선도수련만을 위한 생활을 강요한다면 현실 도피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전통적인 선도수련법대로 행하려면 평생 동안 그 수련에만 매달려야하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들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전통적인 수련법에 평생을 투자해야하는가라는 의문도 들것이다.
물론 그 결과에 이르면 남모르는 흥분과 놀라움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한계성을 극복하는 일은 과학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여러 가지로 힘든 점들이 많기에 꿈과 이상만 갖고는 현실을 버텨나가기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주천과 대주천을 통해 소약과 대약을 완성시켜 양신(시월양태)을 만들고 궁극에는 육신을 기화시켜 승천하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하지만 과연 생각처럼 그러한 세계에 들 수 있는지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도 인체 내면에 또 다른 참자아가 존재하는 양신까지는 가능한 일이지만 육신을 기화시켜 승천하려는 일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여러 가지 물리적인 한계성을 극복해야하는 일이 선결되어져야만 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엿보이지만 결론적으론 무리가 따르는 이상에 속한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항상 한곳에 집중되지 못하는 다인성 방랑벽을 갖고 있는 데다 기 또한 마음을 너무도 흡사하게 닮아 그 실현가능성은 희박해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도입기 성숙기 완숙기를 지나 절정에 다다르고 나면 반드시 쇠퇴기가 자석처럼 따라붙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 놓고 자유자재로 갖고 놀도록 하늘이 방관만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야할 일은 생활과 수련이라는 이중적인 생활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는가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한가지보다는 두 가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떠나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 지향적인 경향을 강하게 인식하여 이 둘을 결합한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생활과 수련이라는 이중적인 생활을 더 즐겨한다는 뜻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물론 선도수련만을 위해서 평생을 투자할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이 둘을 결합한 방법대로 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둘을 결합한 방법이 선도수련만을 위한 방법보다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둘을 결합한 방법도 잘 응용해서 효율적으로 실행만 한다면 오히려 선도수련만을 위한 방법보다 월등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높은 세계를 접하는 일은 선도수련만을 위한 수련이나 생활과 수련이라는 이중적인 생활을 통해서 얻는 높은 세계와 비교해보아도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물리적으로 승천까지 꿈꾼다면 아무래도 선도수련법이 더 우월한 입장에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정신적인 깊이만을 다룬다면 동등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육신을 통해서 변화를 꾀하는 일은 먼저 물리적인 한계성을 극복해야하지만 정신적인 세계는 이미 초월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양한 입장에서 처음과 끝을 왕래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깨달음만으로 모든 학문을 다 섭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깨달음으로 모든 학문적 배경을 초월할 수는 있지만 학문 자체를 다 섭렵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남들과 똑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은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수련에 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고 본다.
주어진 환경에서 풍부한 정보를 접하고 실행력이 높은 실천만 따라준다면 그 어느 곳에 처해있던지 가능성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주어진 유리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낭비하거나 허송세월로 보낸다면 그 결과는 한 장의 그림으로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 있던지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부지런을 떨며 움직여야 하나라도 더 실천하고 그 결과 또한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루는 이론적 근거 또한 선도수련법만을 위한 방법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기본취지는 현실생활을 영위하면서 수련을 병행하는 입장으로 전개시켜나감을 주지하여야할 것이다.
효율적인 경락 흐름도를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과정은 이해를 하는데 결과에는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이론적인 이해만 하고 실천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게으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예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청아당 엄 상 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