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바라본 사후세계관
기독교에서 바라본 사후세계관
하나님은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니다보니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다고 한다.
일차원적인 일직선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다니다보니
장애물이든
벽이든
물이든
바다든
거침없이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형상으로
드나들다 보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기독교 계파 간에서 말하는
현상학적인 영지주의보다는
말씀위주의 성서무오설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영지주의는
현상과 행위 중심으로 사후세계를 유도하다보니
각종 부작용이 일어나 목숨을 걸고
그 계파에 몸을 담그는데 비하여
말씀 위주의 성서무오설은
은혜를 통해 사후세계에 무사히 안착하게 된다고 한다.
은혜에 대한 기준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은 행위나 은혜를 입었다면
사후에 영혼은 순식간에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고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다시는 지상에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불교는 윤회사상이 있다 보니
기독교입장에선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한다.
인도에 가보면 보리수가 있는데
원뿌리와 나무기둥은 하나인데 그 둘레가 무려 12km에 걸쳐
또 다른 뿌리와 나무기둥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줄기가 땅으로 내려와 뿌리와 나무기둥으로 자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으로 영감을 얻어
윤회사상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죽으면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태어나거나
동물로, 식물로 기타 다른 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사후세계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일부의 목회자가 말하는 것이다.
2018년 7월 26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