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를 회상하며
영흥도를 회상하며
영흥도를 가려면
인천에서 소래포구를 지나 시흥시를 지나야하고
시흥시에서 안산시를 지나야하고
안산시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시화호조력발전소를 지나야하고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를 거쳐
인천광역시인 선재도(선재대교)를 지나 영흥대교를 건너면
비로소 영흥도에 도착하게 된다.
정왕 IC를 지나 시흥시에 도착하니
아파트 완공을 앞두고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소래포구를 건너면 아파트 숲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시흥시가 신흥 시이다 보니
사회기반시설 및 도로망 확충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시화호조력발전소(안산시)에 도착하니
바닷물이 출렁인다.
송도국제도시가 한눈에 보이고
인천신항이 한눈에 보인다.
대부도(안산시)와 오이도(시흥시)를 이어주고 있는
시화방조제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오이도 방향 시화방조제 옆구리엔
시화호 일부가 매립되어져 있었고
유통단지와 도로 및 터널이 조성되어지고 있다.
그동안 가림 막으로 막아놓아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오픈되어져 낱낱이 바라볼 수 있게 해놓았다.
시화호 끝 쪽도 매립 중에 있다.
배낚시를 하기 위해 배들이 둥둥 떠 있다.
시화방조제를 바람처럼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영흥도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이다.
선재대교가 나타나고
영흥대교가 나타난다.
영흥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강고집칼국수집에서
바지락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생각보다 고집이 세다.
맛을 잃지 않는 묘미를 부린 것 같다.
칼국수를 맛있게 먹은 후
배낚시를 즐기는 해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배낚시를 즐기는 조사님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선재도에도 조사님들이 많지만
영흥도에는 더 많은 조사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수협과 횟집이 즐비하고
강태공들이 즐겨 잡는 고기는
망둥어와 광어 그리고 주꾸미(쭈꾸미)다.
그리고
가끔씩 갑오징어와 낙지를 잡아들이기도 한다.
수협수산물직판장어부들쪽엔
진두선착장이 있고
영흥수산물직판장이 있고
영흥어시장이 있고
둔두래섬이 있다.
영흥도의 볼거리 및 특산물을 살펴보면
장경리해수욕장이 있고
십리포해수욕장이 있고
국사봉이 있고
업벌이 있고
에너지파크가 있고
왕가마을이 있고
해군영흥도전적비가 있고
영흥도버스터미널이 있고
낭하리해수욕장(선재도)이 있고
측도(선재도)가 있고
목섬(선재도)이 있다.
특산물로는
포도가 있고
바지락이 있고
버섯재배단지가 있고
영흥 김이 있다.
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자료출처 :
영흥 익령군(靈興 翼靈君)길 안내문에 의하면
고대의 유적과 유물로 출토된 토기 패총의 발견으로 조산된 것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주민과 같은 사람이 살았으며 삼국시대에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영흥도 지역까지 보호하려는 삼국(신라, 백제, 고구려)간의 쟁패가 있었으며 고려 중기 원종에서 충숙왕(1267~1319) 때에는 정치범의 유배지였고 원종 13년(1270년대) 경에는 삼별초의 은둔지가 되었으며 대몽 항쟁기에는 영흥도가 삼별초의 항쟁 기지로 역사에 뚜렷이 등장했던 시기이며 영흥도에 주민 입주와 개간이 이루어진 때이기도 하다. 고려 말기에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왕족 출신인 익령군 왕기(王琦)가 피신을 와서 신분을 숨기고 은거하며 후손들의 화를 피하기 위해 성을 바꾸어 옥(玉)씨와 전(全)씨로 성을 바꾸고 목장의 말을 기르는 목자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영흥도에 주민입주가 본격화된 것은 17세기 마성이 생기며 목장의 확대에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한말까지 강화도와 도성 방어 체계의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오며 영흥도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가 지대하여지면서 업벌에 영흥진을 설치한 것이 그러한 대표적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