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안 불면 아랫사람이 힘들다
위에서 안 불면 아랫사람이 힘들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어찌 보면 만고불변의 원칙 같지만
때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위에서 시켜서하는 잘못은
간신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자진해서하는 잘못은 충신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간신이 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안 불면 아랫사람이 힘들 수밖에 없다.
보라!
일국의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가?
불려가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불려가서 입을 열지 않은가?
그래도 뻔뻔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지 않은가?
위에서 불면 간단한데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윗사람을 잘못 모시거나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능한 지도자 밑에 있느니
그만 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랫사람이 입을 열게 만드는데
가장 큰 요인은 윗사람에게 있다.
처음부터
윗사람이 맑으면
아랫사람도 맑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만고의 역적이나 간신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간신을 간신으로 몰아가는 것도
좋지 않은 편견인 것 같다.
정권대신 이권을 잡은 윗사람 때문에
충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충신이라고 해서
다같이 존경받는 충신은 아니라고 본다.
충신 중에서 간신도 충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이권을 잡은 윗사람을 위해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방위적으로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국정농단한 사람을 위해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공존하는 선악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