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를 안다는 것은Ⅱ
클레오파트라를 안다는 것은Ⅱ
파라오의 사랑!
가장 빨리 가는 길은 위험할 수 있다.
해협이 있어 그렇고
소용돌이가 있어 그렇고
해적이 있어 그렇다.
해적과 소용돌이를 동시에 만나
해적에게 죽을 뻔 했으나 경비원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났고
소용돌이에 휘말려 배와 사람이 빨려 들어갈 뻔 했으나
천우신조로 소용돌이와 해협을 빠져나와
무사히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마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백마를 탄 집정관과 관리들에 의해
로마 인민의 집정관이자, 대원수, 독재관 G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별장으로 안내받은 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얼마나 잤는지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그렇게도 보고 싶은 카이사르가 눈앞에 있었다.
"나요. 내가 왔소, 내 사랑."
"용서하시오. 당신을 만날 수도, 편지를 보낼 수도 없었소. 소식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소. 아무튼 당신이 이렇게 와서 몹시 기쁘오. 내가 드러내 놓고 말은 못 했지만, 당신이 내 마음을 헤아려 줄 거라고 생각했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원했다.
카이사르는 빠져나가고
클레오파트라는 정원의 석조 분수대 곁에 서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일출을 맞이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차르미안과 함께 로마를 사전에 답사하기 위해
둘 다 변복을 한 채 로마를 둘러 보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협소했으며
생각보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관습과 풍습이 다르고 격식이 다르다보니
도시의 규모로만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없는 것도 있었으며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한번에 비교하기란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가 고전적이자 보수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면서도
신전과 전통, 유령의 도시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설계한 도시라면
로마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변화하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 7세와 그의 아들 카에시리온
그리고 막내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왕 14세가
로마의 카이사르 집무실로 초대되었다.
"만찬이 있는 날 아침, 빗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창밖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준비가 다 끝났다. 이집트식 의상을 입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빛 속에서 본 포룸은 훨씬 인상적이었다.
비가 온 데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인지 포룸에는 거의 인적이 없었다.
저 멀리 아래에 레기아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과 베스타 신전의 둥근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신전 건물 밖에서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카이사르의 집 밖에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마가 내려졌다."
"두 분 폐하께서는 이번에 아주 위험한 여행을 하셨습니다."
카이사르가 말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불쑥 말했다.
"우리는 신성하다 싶을 정도로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들에 둘러싸여 살거든요.
어디를 가나 무덤이 있고, 석상이 있고……유령들이 있어요."
클레오파트라가 말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예요.
알렉산드로스 대왕께서 설계하셨지요."
"카이사르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고, 나는 말없이 그에게 몸을 기댔다.
피로가 밀물처럼 밀려온 것이다. 만찬은 나에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가 말했다.
"새 포룸이지."
우리는 사원 한켠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이건 비너스 여신이오."
"그리스 조각가 아르케실라오스의 작품이오."
그가 말했다.
그가 등불을 오른쪽으로 옮겨 다른 입상을 비추었다.
그것은 카이사르 자신의 조각상이었다.
"그리고 이건 당신에게 주는 내 선물이오."
그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등불을 왼쪽의 나머지 조각상 쪽으로 옮겼다.
어둠 속에서 조각상이 드러났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입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신 거예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은 걸 어떡하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나는 그 거대한 조각상에서, 즉 여신 차림을 하고
카이사르와 그의 수호 여신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내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두 팔로 나를 꼭 끌어안더니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여기에서 비너스 참배식을 행하고 싶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원 헌당식 이전에 당신과 단둘이서 참배를 드리고 싶소."
카이사르가 말했다.
10일간 개선식을 4회에 걸쳐 성대하게 행사하기로 했다.
세계를 정복한다는 것은
그 나라에서 가장 값진 금은보화와 문화유산을
약탈하는 행위이자
그 나라의 인적자원을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강탈하는 입장에서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약탈 당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천인공노할 일인가?
약탈한 것도 모자라서 개선식까지 연다는 것은
인간을 더욱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약탈한 전리품을 싣고
개선식을 치렀다.
고대 로마 시대에서는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살육과 폭력의 경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마술을 벌이다 말발굽에 치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슬픔 대신에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속내는
그 어느 민족보다도 호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벤허'에 등장하는 마차경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죽을 때까지 싸워 마지막으로 승리하는 자만이 인정받는
로마 사회야말로 지탄받아야 민족이라고 본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마치 노예로 보는 것 같다.
노예는 인권을 보호받을 안전장치가 없다보니
말 그대로 개죽음이거나 죽을 때까지 싸우며
처참한 광경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흑표범을 풀어 죽이는 장면을 연출하고
황소를 풀어 죽이는 장면을 연출하고
사자와 호랑이, 곰, 기타 동물들과 싸우게 하였지만
그중에서 사자가 가장 셌다.
그리고
사자 4백 마리 이상을 풀어놓고 서로 싸우게 하여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것도 부족하여
코끼리 수십 마리를 싸우게 한 후
모두 다 죽게 만들었다.
죽음과 폭력을 좋아하는 로마인의 피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역설적인 것은
죽음과 폭력을 보러가다가 100만 명이 넘는
수많은 인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시민들과 원로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2년간 로마에 머물면서 긴장감과 음모 때문에
단 한순간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사랑한 카이사르는
결국 원로원의 음모로 인해 암살 당하고 만다.
석상아래에서 무참하게 칼에 의해 난자 당하고 만다.
그것도 가장 절친한 친구에 의해 함정에 빠져 죽고 만다.
죽기 전 클레오파트라에게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을 타고 평원을 향해 달린다.
폐허가 된 사원에서 사랑을 나눈 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별장으로 가고
카이사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후 바쁜 업무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었고
피살된 후에야 만날 수가 있었다.
그 누구하나 카이사르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가 없었고
결국 두려움을 무릅쓴 채 카이사르의 시신을
카이사르의 집으로 옮기는데 성공하였다.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 장군의 도움으로
국장을 치룬 후 화장되고 로마시민들에게 신격화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양아들로 지정되어
후계자로 지명된다.
그 뒤로 슬픔을 뒤로한 채
자신의 왕궁이 있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다.
로마와 이집트를 비교하면
지옥과 천국이었다.
그동안 마르디안과 올림푸스가 대신 집정하고 있었다.
밀린 국사부터 검토한 후 대신들과 회의를 한 후
밀려드는 잠에 빠져 들었다.
그 후 카이사르의 자식이 유산되고
동생이자 부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다.
부왕인 아버지가 죽고
왕비인 어머니가 죽고
두 언니 중 한명은 반란으로 인해 죽고
한명은 유배가고
남동생 두 명이 죽고
카이사르의 자식을 임신한 클레오파트라는
극도의 슬픔과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유산되고 말았다.
마지막 끈이 떨어져나가는 슬픔을 맛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그 와중에도
연약한 한 여인의 몸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왕조를 지켜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로마의 속주가 되지 않으려면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매혹적이었던 지략의 여인 클레오파트라 여왕!
실제로 로마에서 많은 것을 배웠던 건 사실이다.
그를 바탕으로 이집트 왕국을 이끌어나가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다.
당대 최고의 명성을 지닌 안토니우스는
소아시아 속주를 순회하는 과정에서
파르티아 원정에 관한 자금을 협의하기 위한 명목으로
클레오파트라를 불러 들인다.
클레오파트라는 각종 금은보화로 배를 치장한 후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면서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든다.
안토니우스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오직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 로마에도 가지 않는다.
안토니우스가 죽자 클레오파트라는 로마로 끌려가
개선행렬식 때 자신을 내세울 것을 알자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죽자 레피두스까지 축출한 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함으로써
마침내 지중해 일대를 통일하게 된다.
100년에 걸친 로마의 내란이 모두 끝나자
로마시민들은 "옥타비아누스 만세!"를 부른다.
그러고 보면
"이시스의 딸!"에선
이집트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면
"파라오의 사랑!"에선
로마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나머지 책에선 이집트와 로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