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 교동읍성
교동도 - 교동읍성
대룡시장에서 출발하여
마을로 들어가니
교동읍성(喬桐邑城)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 축성하기 위해
상판을 들어낸 후
홍예문 가운데를 메꾸어 놓았다.
분명
사진 상으로는 볼만해서 와봤는데
사람을 놀라게 해도
적당하게 해야 하는데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작고 허름한 곳이라면
홍보나 하지말지
실망이 크다.
하지만
새롭게 축성하고 나면
그 모습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시간여행에서 조금 빠르게 왔을 뿐
후회는 없다.
2017년 8월 26일 토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
자료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虹霓)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도서와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외적의 방어를 위해 고을성을 많이 축조하여 왔는데 교동읍성 이외에도 인근의 강화읍성, 충청남도의 해미읍성과 안흥성, 전라북도의 고창읍성,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