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왜, 나에게만 찾아오는가?
고난은 왜, 나에게만 찾아오는가?
고난은 왜, 나에게만 찾아오는가?
앞을 가로막는 신의 손길이 느껴질 때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주승중 위임목사께서
다윗왕의 예를 들어가며
인간이 생각하는 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는 데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원하는 데로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원하는 데로 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신인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종교의 세계는
신의 존재를 믿다가도
포기하거나
또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원하는 데로
신이 움직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신이 원하는 것은
신이 원하는 데로
인간이 움직여주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주는 것이
목회자이자
인간과 신과의 관계이다.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누구를 위해 죽을 것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뜻대로 살아도 살아갈 수가 있고
신의 뜻대로 살아도 살아갈 수가 있다.
인간이 원하는 기준치에
못 미치는 것은
인간이든
신이든
마찬가지이다.
완전한 채움보다는
비움을 통한
새로운 채움을 원하기에
부족함은
인간의 곁을 떠날 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이든
신이든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어지기에
그 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이 우주상에 아무도 없다.
이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가?
이 얼마나 환상적인 꿈인가?
신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간이 인간을 믿는 것보다는
신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놓는 것이
그나마 인간에게 이로움이 되어 지고 있다.
그리고
채움과 비움 속에서
내려놓을 때는 내려놓고
잡을 때는 잡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냥 놓아둘 수밖에 더 있겠는가?
때 되면 저절로 해결되어지기에
하늘을 믿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인간을 믿든
신을 믿든
자신의 뜻대로 안될 때는
하늘의 뜻대로 맡겨두는 것이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