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당 2015. 8. 23. 19:02

통영 - 해저터널

 

한려수도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통영 해저터널을 향해 달려갔다

 

거가대교 중 가덕 해저터널을 먼저 살핀 후

통영 해저터널을 건너보니 남다른 점이 발견되어지고 있다

가덕 해저터널은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곳이지만

통영 해저터널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가덕 해저터널은 24시간 유료로 통행되어지고 있지만

통영 해저터널은 24시간 무료로 통행되어지고 있다

 

통영 해저터널을 찾아 확인한 결과

주택가와 주택가 사이에 놓여 있어

차량으로 통행할 수 없다는 소박한 경종만 울리고 있다

처음엔 실망감을 느꼈지만

나무다리에서 돌다리로

돌다리에서 해저터널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당시 토목건설 수준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시작이 중요한 것처럼

창의적인 첫발은 그 기억이 어디에서 끝날지 모르기에

그만큼 소중하고

그만큼 가슴 벅차고

그만큼 놀라울 따름이다

더구나 지금껏 그 명망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관광정보 안내 책자에 의하면

통영 해저터널은 동양 최초 해저터널로서 육지와 섬을 잇는 해저도로이다.

 

통영 해저터널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써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멈춰진 시간과 공간으로의 여행 - 통영 해저터널

 

통영 해저터널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201호로 지정된 통영 해저터널은 1931년 7월 26일에 착공하여 1년 4개월 만인 1932년 11월 20일에 완공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어민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 간 거리 단축을 위해 이 해저터널이 만들어졌다.

비록 공사의 주창과 시행이 일제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투입된 인력과 자재가 우리민족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바다 양쪽을 막고 그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로 만들었으며 터널입구에 쓰여 있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수중세계를 지나 육지에 다다랐다)’ 이라는 뜻이다.

터널 시공 시 양측에 제방을 설치한 후 해저를 직접 터파기(OPEN CUT)하여 터널을 축조하였다.

 

해저도로계획 개요서에 의하면 해저도로를 이용할 연간 교통량은 사람 9만인, 우마차 1,000대, 자전거 100대, 자동차 1,000대, 가마 1,000거(擧)인 것으로 추정 기록하고 있다.

1967년 착량교(鑿梁橋) 자리에 철근 콘크리트 교량인 충무교(운하교)가 개통되었고 그 후 해저도로를 통한 차량통행은 금지되었다.

 

현재 통영 해저터널 양쪽에는 미륵도로 연결되는 상하수도관이 지나가고 있다.

 

통영운하 변천사(1931년 이전~1967년)를 살펴보면

최초의 나무다리에서 돌다리 개통식을 거친 후 충무교 가설 공사를 통해 충무교와 통영운하가 완성되어졌다고 한다.

 

2015년 8월 16일 일요일

 

청아당 엄 상 호 詩